[Black Channel 11호] 골드와 화폐와 플라토 (2)

Day 1,549, 05:01 Published in South Korea Greece by SionStravinsky
골드와 화폐와 플라토 (1)편 보러가기


1편에서 저는 금과 지역화폐, 그리고 금융시장에 대해 대강대강 써갈기고(..) 금과 지역화폐를 교환할 때 발생하는 막대한 손실로 인해 이런 상태가 유지된다면 금융시장은 데드락에 빠져 정상적인 거래가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근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상급자용] 통화량

현실의 경제와 Erepublik 경제의 두 번째 차이점은 바로 통화량입니다. 우선 아래 그림을 보도록 할까요?



편의상 게임 속에 두 유저만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봇도 없고 세금도 없는 그런 세상입니다. 유저A는 아직 My Land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생산요소시장을 통해 유저B의 공장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상품시장에서 부족한 빵과 탱크를 구입합니다. 또한 금융시장에서 필요에 따라 금을 사거나 팝니다.

유저B는 사업가입니다. 유저A를 고용해 빵과 탱크를 만들고, 생산된 재화를 상품시장에 내다 팔아 이윤을 남깁니다. 이렇게 남긴 이윤의 일부는 임금으로 지불되고, 나머지는 금융시장을 통해 거래합니다.

위 순환을 자세히 보시면 전체 경제 시스템의 통화량은 불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편의상 세금이 없다고 가정하면 위 상황에서 아무리 많은 순환이 일어나더라도 유저A와 유저B의 지역화폐와 골드를 합한 값은 변할 수 없습니다. (세금이 있다면 세금까지 더하면 불변이 되겠지요.) 바로 전체 경제의 지역화폐와 골드를 각각 합한 값, 즉 통화량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외부요인이 없다면 지역화폐와 골드의 환율 역시 불변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여러분이 어떤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중앙은행의 조절 없이는 통화량이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지갑에서 화폐가 빠져나가더라도 국가경제 전체에서 볼 때 화폐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즉 화폐가 돌고 도는 것입니다. 하지만 Erepublik에서 특정 활동은 국가 전체의 골드와 화폐량을 감소시킵니다.

1편에서 등장했던 금과 지역화폐의 사용처를 떠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가령 여러분들이 8500KRW를 들여 Q4 원자재 공장을 짓는다면, Erepublik 세계의 KRW 수량에서 단기적으로 8500KRW만큼이 감소합니다.
가령 여러분들이 0.19골드의 트레이닝을 한다면, Erepublik 세상에서 0.19골드가 사라집니다.
여러분이 빵을 먹으면 회복한 체력에 해당하는 빵은 게임에서 사라집니다.
탱크로 적을 공격해도 무기는 소멸합니다.
재화와 화폐를 가리지 않고 Erepublik상에서는 점점 수량이 줄어들어가는 것입니다.



적절한 개입이 없다면 최종적으로는 여러분이 My Land에서 아무리 많은 빵과 탱크를 만들더라도 그것을 살 지역화폐가 없게 됩니다. 미션, 레벨 업, 하드워커와 슈퍼 솔저로 얻을 수 있는 약간의 금과 지역화폐는 금방 바닥날 것입니다. 간략하게 계산해도 현재 대한민국 국가랭킹 1위 유저분이 Lv46입니다. 2위가 마눌인데 40이 안됩니다. 거기다 하드워커와 슈솔은 대충 한 달 주기로 돌아오므로, 1년간 꼬박 12개씩 모아도 120골드입니다. (논의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메달은 무시하겠습니다. 실제로도 뉴비 입장에서 슈솔과 하드워커 외에는 노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위 상황에서는 하루 평균 쓸 수 있는 금이 0.3G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역화폐의 총량은 영원히 감소하기만 할 뿐입니다. 따라서 금을 지역화폐로 바꾸는 전략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현질을 하지 않는 유저는 게임 진행이 불가능해지고, 따라서 Erepublik은 시원하게(...)망하게 됩니다.


[상급자용] 플라토의 작은 음모

바로 이 만성적인 통화량 부족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데드락 상황을 해결하고 현질에 대한 ‘강제’를 ‘유혹’으로 끌어내려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돈벌이(응?)를 가능하게 하는 플라토의 대책입니다. 이 소름끼치는 ‘적절한 개입’은 두 가지 시스템에 의해 지지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봇’이라 불리는 큰손이 시장을 움직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히 지역화폐가 사라져가는 밑 빠진 독의 경제시스템에 봇이 지역화폐를 공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봇을 운영한다고 해도 플라토는 이득이나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마치 도박판에서 판돈을 빌려주는 사람처럼 말이죠!!

그런데 플라토는 어떻게 아무런 이득이 남지 않는 ‘지역화폐’로 시장을 조종하는 것일까요?
결국 봇이 공급하는 것은 ‘지역화폐’이고, 플라토가 팔고 있는 것은 ‘금’인데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잠시 후에 살펴보겠습니다.

잠깐 심호흡을 하고 2012년 3월의 금값이 얼마가 될지 상상해봅시다.
우리는 미래의 금값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대략적인 예상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1달 전에 앞으로 금값이 1530원까지 뛰어 오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기억하는 작년 겨울 금값은 비쌀 때 1100원 수준이었습니다.(맞나요?)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금값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이제 금값 하락을 예상합니다.

미래에 금값이 앞으로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계속 금을 보유하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 금값이 충분히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금을 팔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투자 수요’이지 ‘실제 수요’는 아닙니다. 여기서 두 번째 시스템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등장합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Erepublik은 웹 게임이고 상당히 느긋한 진행을 취하고 있습니다. 특징적으로 일, 훈련은 하루 한 번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뉴비종합선물세트에도 적혀 있듯 ‘최소한 하루에 투 클릭은 하는 것’이 상당한 이득인 것입니다. 설령 금을 마구 퍼부어 훈련 센터를 모두 돌린다고 해도 ‘시간에 의한 힘의 누적’을 따라잡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뉴비와 올드비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가 시간에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 한정된 시간 때문에 금을 소모하는 훈련 센터들을 가동하기 위해서 많은 유저들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지역화폐로 부족한 금을 매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Erepublik에서는 ‘많이’ 플레이를 하는 것보다도 ‘오래’ 플레이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플라토는 이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플라토의 시간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업그레이드 44% 할인 이벤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Erepublik의 모든 이벤트는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금 할인 판매도 그렇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완제품 공장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금을 44%나 절약할 수 있다면, 다소의 지역화폐 손해는 감수할 만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더군다나 크리스마스 미션도 그랬고, 이번 신년 미션도 시간의 제약이 있습니다. Q6 공장이 처음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훈련소 둘째 날 아침의 빨간 모자 아저씨 같으니!

플라토는 이런 식으로 경제 시스템에 외부 충격을 던지면서 금융시장의 거래를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봇으로 지역화폐를 공급하고 시간으로 제약을 걸어 데드락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봇은 지역화폐를 공급하기만 하는 것일까요?

3편에서 봇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