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살을 맞은 사나이 1

Day 1,359, 01:22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Carl Jung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저
박상준 역

로봇 공학의 세 가지 법칙:

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인간에게 해를 끼칠 우
려가 있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

2. 로봇은 제 1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3. 로봇은 제 1 법칙과 제 2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
신의 몸을 보호해야만 한다.

1.

"고맙소이다."
그리고 나서 앤드류 마틴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영원한 휴식을 앞두고 마지막 기운을 쓰고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전혀 그런 낌새를 챌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알 듯 모를 듯하게 멍한 표정을 한 얼굴을 제외하면, 이상한 점이라곤 전혀 없었다. 혹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의 눈에서 슬픔이 느껴진다고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그의 엷은 갈색 머리는 부드럽고 섬세한 결을 지녔고, 얼굴에는 잔털이 전혀 없었다. 방금 깨끗하게 면도를 마친 듯 했다. 입고 있는 옷은 붉은 기가 센 자주빛이 주로 눈에 뜨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모양이었지만, 단정하고 말쑥한 차림이었다.
그와 마주보고 있는 책상 뒤에는 외과의사가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명판에는 여러가지 직위며 명칭이며 숫자 따위가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으나 앤드류가 신경 쓸 것들은 아니었다. 그저 의사선생이라고 부르면 족하다.

"수술을 언제 할 수 있겠소, 의사선생?"

로봇이 인간을 향해 얘기할 때면 항상 담겨 있기 마련인, 그 절대적인 존경의 목소리로 의사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손님. 그런 수술이 가능한지, 그리고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얼굴에 얼핏 정중하지만 비협조적인 표정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연한 갈색으로 덮인 로봇의 스텐레스 스틸 얼굴에서도 그런 표정을, 아니면 어떤 표정이라고 할만한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앤드류 마틴은 로봇의 오른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메스가 달린 그 손은 책상위에 굳은 듯이 꼼짝않고 놓여 있었다. 기다랗고 미끈한 곡선을 그리며 예술적인 조형미를 보이는 금속제 손가락들을 보고 있노라면 근사한 외과 수술용 메스가 연상되었고 그러다가 이윽고 그 메스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가 작업을 할 때면 그 어떤 주저함도, 더듬거림도, 떨림도, 그리고 실수도 없을 것이다. 의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물론 그 완벽함은 인간들에 의해 이식되어진 고도의 전문 기술이다. 결코 로봇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완벽한 전문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 로봇 역시 이식된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앤드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앤드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다.

앤드류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소?"

의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마치 자신의 양전자 두뇌에는 그 질문을 처리할 부분이 없다는 것 처럼.

"그러나 저는 로봇입니다, 손님."

"인간보다 더 좋은 것 같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손님. 더 좋은 의사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인간이었다면 지금처럼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된 로봇이라면 가능하지요. 저는 고도로 발달된 로봇인 것이 기쁩니다."

"내가 당신을 이리저리 부려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지 않소? 당신더러 일어나라, 앉아라, 왼쪽으로 가라, 오른쪽으로 움직여라 하고 단지 말하는 것만으로 당신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 화나지 않소?"

"당신을 기분좋게 해 드릴 수 있다면 저도 기쁩니다, 손님. 만일 당신의 명령이 당신이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제 기능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첫 번째 법칙은 복종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두 번째 법칙보다 우선합니다. 그렇지만 않다면 복종은 곧 저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수술을 누구에게 해야 하지요?"

"내게 하시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 수술은 분명히 손상을 입히는 것입니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소."
앤드류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인체에 손상을 입힐 수 없습니다."

"물론 인체에 손상을 입힐 수는 없지요."

앤드류는 얘기했다.
"그러나 나 역시 당신과 같은 로봇이오."

2.

앤드류가 처음으로 '생산'되었을때는 좀 더 로봇에 가까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가장 기능적으로 설계된, 그러면서도 가장 섬세한 외형을 가진 로봇 중의 하나였다. 앤드류가 그 집으로 간 것은 가정용 로봇이 아직 세계적으로도 희귀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앤드류는 훌륭하게 제 몫을 해 내었다.
그 집에는 모두 네 식구가 있었다. 주인님과 마님, 그리고 큰아씨와 작은 아씨였다. 그는 물론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불러 본 적은 없다. 주인의 이름은 제랄드 마틴이었다.
그의 고유번호는 NDR -- 그는 번호를 잊어버렸다. 물론 오랜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그가 기억하려 했다면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기억하기를 원치 않았다.
처음에 그를 앤드류라고 부른 것은 작은 아씨였는데, 그 소녀는 아직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에 그냥 자기가 아는 남자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그 뒤 다른 식구들도 모두 그를 앤드류라고 불렀다. 작은 아씨 -- 그녀는 아흔 살까지 살았고 이제 죽은 지도 오래되었다. 그는 언젠가 작은 아씨를 '마님'이라고 부르려 했지만 작은 아씨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작은 아씨였다. 앤드류가 했던 일은 주로 시종이나 집사, 그리고 하녀의 역할이었다. 그 시절이 그에게는 시험기간에 해당하는 나날들이었는데, 사실 산업 현장이나 지구 밖의 탐험 기지에서 일하는 로봇을 제외하면 모든 로봇이 다 시험기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마틴 일가는 앤드류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큰아씨나 작은 아씨와 놀아 주느라 일하는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빼앗기기 일쑤였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한 사람은 큰아씨였다. 그녀는 말했다.
"너는 우리가 명령한대로 따라야 해. 우리와 놀아."

"죄송합니다만, 아씨. 주인님께서 내리신 명령이 더 우선권을 갖고 있습니다."

"아빠는 그냥 네가 청소하는 일을 했으면 하고 말하신 것 뿐이쟎아. 그건 명령이라고 할 수 없지. 나는 명령하는 거야."

주인은 개의치 않았다. 주인은 큰아씨와 작은 아씨를 심지어 마님보다도 더 좋아했고, 앤드류 역시 그 둘을 좋아했다. 적어도 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 것은, 인간이 본다면 애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얘기할 만한 것이었다. 앤드류는 그것을 애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로서는 달리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무를 깎아서 목걸이 장식을 만든 것은 작은 아씨를 위해서였다. 그녀가 시킨 일이었다. 큰아씨가 생일 선물로 소용돌이 모양의 무늬가 있는 상아 목걸이를 받았는데, 작은 아씨가 아무래도 심통이 났던 모양이다. 그녀는 나무 조각 하나를 작은 부엌칼과 함께 앤드류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가 순식간에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자 작은 아씨가 말했다.
"좋았어, 앤드류. 아빠한테 가져가서 보여 드릴 거야."

주인은 믿지 않았다.

"맨디야, 너 정말 이걸 어디서 가져 왔니?"

맨디는 주인이 작은 아씨를 부르는 이름이다. 작은 아씨가 얘기하는 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깨달은 주인은 앤드류를 돌아 보았다.

"이걸 정말 네가 만들었니?"

"네, 주인님."

"무늬도?"

"네, 주인님."

"이 무늬를 어디서 따 온 거지?"

"나뭇결의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주인님."

다음 날, 주인은 좀 더 큰 나무조각을 가져와서 전기식 진동칼과 함께 앤드류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는 말했다.

"이걸로 뭐든지 만들어봐라, 앤드류. 뭐든지 네가 원하는대로."

주인은 앤드류가 작업하는 광경을 주의깊게 쳐다보았고, 마침내 만들어진 것을 오랫동안 살펴보았다. 그 이후로 앤드류는 책상 옆에 멍하니 서서 명령을 기다리는 일이 없어졌다. 대신 그는 가구 디자인에 관한 책을 읽도록 명령받았고, 결국 장롱과 책상 따위를 멋지게 만들어내게 되었다.

주인은 말했다.
"이건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다, 앤드류."

앤드류는 말했다.
"저는 이런 걸 만드는 것이 즐겁습니다, 주인님."

"즐겁다고?"

"이런 일들은 제 두뇌 회로의 흐름을 더 빠르고 쉽게 해 줍니다. 저는 주인님께서 '즐겁다'라고 말하시는 것을 들었고, 그 말을 하실 때의 상황은 제가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이 즐겁습니다, 주인님."

3.

제랄드 마틴은 앤드류를 [합중국 로봇 및 기계 인간] 회사의 지역 사무실로 데려 갔다. 지방 의회 의원인 마틴은 수석 로봇심리학자와 면담기회를 갖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사실 마틴은 그 지역에서 로봇을 가진 단 한명뿐인 의원이었다. 그 시대에는 아직 로봇이 귀한 존재였던 것이다.
당시 앤드류는 그 모든 일들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많은 배움을 쌓은 뒤 지나간 추억들을 다시 되새겨보면서 비로소 올바른 안목으로 그 때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로봇심리학자 머튼 맨스키는 눈썹을 모은 채, 책상위를 또닥거리던 손가락을 적어도 한 번은 멈춰가면서 마틴의 얘기를 들었다. 찡그린 얼굴과 주름살이 그어진 이마는 그를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게 했다.

그가 말했다.
"로봇 공학이란 그렇게 엄밀한 학문은 아닙니다, 마틴 씨. 자세히 설명드릴 순 없지만 양자 두뇌를 구성하는데 바탕이 되는 수학 이론은 너무 복잡해서, 예상할 수 있는 결과래야 그저 두루뭉실한 근사치밖엔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세 가지 법칙은 분명히 저희들이 입력해 놓았으니까 변할리는 없습니다. 물론 원하신다면 이 로봇의 두뇌를..."

"아아, 아닙니다. 로봇의 두뇌가 불만스럽다는 게 아닙니다. 그는 명령한 일을 완벽하게 해 냈어요. 문제는, 그가 나무를 아주 정교하게 깎았는데 똑 같은 무늬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예술가처럼 작업을 한단 말이에요."

맨스키는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이상하군요. 최근 우리는 두뇌회로를 표준화시키려고 시도하는 중인데...정말로 로봇이 창조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직접 보십시오."

주인은 둥그런 나무조각을 건네주었다. 그 작은 나무조각 표면엔 소년소녀들이 뛰어 놀고 있는 운동장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세부적인 묘사는 정확했고, 조각한 듯한 나뭇결 무늬와 잘 어우러져 있었다.

맨스키가 말했다.
"이걸 그가 만들었다고요?"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나무조각을 다시 돌려주었다.

"어쩌다 그런 겁니다. 아마 그의 회로 어딘가에 기억돼 있던 모습일 거에요."

"이런 로봇이 또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한 번도 보고받은 적이 없어요."

"거 잘됐군요! 나는 앤드류가 유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로봇을 다시 반품시켰으면 좋겠군요. 우리가 연구를 좀 해 봐야겠습니다."

주인은 갑자기 무뚝뚝해지며 말했다.
"허락할 수 없소. 잊어버리시오."

그는 앤드류에게 말했다.
"자, 집으로 돌아가자."

"네, 주인님 좋으실대로요."

4.

큰아씨는 남자아이들과 데이트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제 앤드류의 상대는 주로 작은 아씨였다. 더 이상 호칭처럼 '작은' 아씨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앤드류가 처음으로 깎아 준 나무 목걸이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 가느다란 은실에 꿰어다가 언제나 목에 걸고 다녔다.
앤드류가 만든 목공예품들을 남에게 줘 버리곤 했던 주인에게 처음으로 반발한 것은 작은아씨였다. 그녀는 말했다.
"아이 참, 아빠. 누구든지 그걸 갖고 싶다면 값을 치르라고 하세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쟎아요."

"그렇게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맨디야."

"우리가 아녜요, 아빠. 예술가를 위해서에요."

앤드류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사전을 찾아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인과 여행을 했다. 이번에 만나러 간 사람은 주인의 변호사였다.
주인이 그에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존?"

존 페인골드 변호사는 흰 머리에 배가 불룩하고 땅딸막한 사람이었다. 눈에는 연한 녹색의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다. 그는 주인이 건네 준 나무장식물을 살펴보았다.

"아름답군요...얘기는 들었어요. 당신 로봇이 만들었다지요? 당신이 데려 온 이 로봇이."

"그렇습니다. 앤드류가 만들었지요. 안 그래, 앤드류?"

"그렇습니다, 주인님."

"당신은 얼마나 값을 쳐 주시겠소, 존?"

"글쎄,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저는 목각품 수집가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 조그만 것을 250달러에 사겠다는 제의가 있었다면 믿으시겠소? 앤드류가 만든 의자들은 500달러씩에 팔리고 있어요. 이제까지 앤드류가 벌어들인 돈이 20만 달럽니다."

"오오! 당신을 갑부로 만들었군요, 제랄드."

"절반은 그렇죠."

주인은 말했다.
"나는 그 돈의 절반을 앤드류 마틴의 이름으로 예금해 두었소."

"로봇 말입니까 ?"

"맞았소. 그리고 난 그게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 알아보러 온 거요."

"법적인 하자가 없냐고요?"

페인골드가 뒤로 기대면서 의자가 삐걱거렸다.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요, 제랄드 씨. 당신 로봇은 필요한 서류에 어떻게 서명을 했소?"

"그는 자기 이름을 쓰고 나는 그 서명을 은행으로 가져갔소. 그를 직접 데려가지 않고. 내가 더 할 일이 있습니까?"

"으음."

페인골드의 눈동자가 잠시 눈 안쪽으로 돌아간 듯이 보였다. 그러더니 그가 말했다.
"에에, 그의 이름으로 된 돈을 신탁 재산으로 관리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를 흑심을 품은 사람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지요. 그 밖에는 달리 조언을 드릴게 없습니다. 그렇게하면 아무도 당신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테니까요. 만약 누구든 반대한다면, 정식으로 소송을 걸라고 하십시오."

"만약 소송이 들어오면 사건을 맡아주시겠소?"

"보수만 충분하다면, 물론이죠."

"얼마나 원합니까?"

"뭐 이 정도가 되겠지요."

페인골드는 나무장식을 가리켰다.

"적당한 것 같군요."
주인이 말했다.

페인골드는 싱글벙글하는 표정으로 앤드류를 돌아보았다.

"앤드류, 돈을 가지니까 기분이 좋나?"

"네, 그렇습니다."

"그걸 가지고 뭘 할텐가?"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걸 사지요. 주인님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겁니다."

5.

돈 쓸 기회는 찾아왔다. 앤드류의 몸은 계속 정비를 해 줘야 한다. 수리비는 비쌌고 더 좋은 부품으로 교체하는 것은 더욱 비쌌다. 해가 갈수록 새로운 모델의 로봇들이 속속 나왔고, 주인은 앤드류를 언제까지나 독보적인 기계 인간의 전형으로 남기기 위해 최신 부속품으로 갈아 끼워주었다. 그 모든 비용은 앤드류가 치뤘다.
앤드류가 그렇게 원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의 양전자 두뇌만큼은 절대로 손대지 않았다. 주인이 그렇게 원했기 때문이었다.
"새로 나오는 것들도 너 같이 뛰어난 건 없어, 앤드류."

그는 말했다.
"새로 나오는 로봇들은 죄다 형편없어. 로봇 회사는 회로를 좀 더 정확하게 만들고, 코를 좀 더 사람 모습과 가깝게 만들고, 발자국이 좀 더 깊어지게 만들기만 했지. 새 로봇들은 생각을 바꿀 줄 몰라. 그저 처음에 설계된 대로만 움직이지 다른 길은 모른다구. 난 네가 더 좋다."

"고맙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그게 너의 할 일이다, 앤드류. 절대로 잊지 마. 맨스키가 너를 뜯어봤다면 분명히 표준화된 양자두뇌로 바꿔버렸을 거야. 그 사람은 뭐든지 예측불허인 것을 싫어하니까... 그 사람이 너를 연구하게 해 달라고 몇 번이나 졸라댔는지 알아? 자그마치 아홉 번이라구! 그래도 난 단호하게 거절해 왔지. 이제 그는 은퇴했으니 우리도 좀 편해진 셈이야."

마찬가지로 주인의 머리결도 가늘어지고 회색이 되었으며 볼의 피부도 늘어졌지만, 앤드류는 오히려 처음 그 집에 올 때보다 더 상태가 좋아 보였다.
마님은 유럽의 어느 예술가들 집단부락으로 들어갔고, 큰아씨는 뉴욕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가끔 편지를 썼지만 어쩌다 한번씩일 따름이었다. 작은 아씨는 결혼해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앤드류와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면, 즉 작은 주인이 생기면 젖병을 앤드류에게 주고 양육을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인의 손자가 태어나자 앤드류는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가 생겼다고 느꼈다. 앤드류는 이제 주인에게 요구를 하는 것도 그리 부당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앤드류는 말했다.
"주인님, 제 돈을 제가 원하는대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건 원래 너의 돈이지, 앤드류."

"주인님의 너그러운 배려 덕분에 갖게 된 것이지요. 주인님이 그 돈을 모두 가지셨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법이 내 양심을 가려 줄 수는 없다, 앤드류."

"그 모든 수선비용과 세금을 제하고도, 주인님, 저는 아직 60만 달러 가까이 가지고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앤드류."

"그걸 주인님께 모두 드리고 싶습니다, 주인님."

"난 그 돈을 받고싶지 않다, 앤드류."

"주인님께서 제게 주실 수 있는 무엇과 바꾸고 싶습니다, 주인님."

"오 그래? 그게 무엇이지, 앤드류? "

"저의 자유입니다, 주인님."

"너의 - "

"저는 자유를 사고 싶습니다, 주인님."

6.

쉬운일은 아니었다. 주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말했다.
"맙소사!"

그는 돌아서서는 성큼성큼 걸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를 완강하게 설득하여 다시 앤드류의 앞으로 데리고 온 것은 작은 아씨였다. 지난 30년 동안 그 누구도 앤드류의 앞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앤드류를 의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앤드류가 화제에 들어있건 없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지 로봇일 뿐이다.

그녀는 말했다.
"아빠, 왜 그걸 개인적인 모욕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계속 우리 집안에 머무를 거예요. 앞으로도 변함없이 충직하게 봉사할 거란 말이예요. 그럴 수 밖에 없다구요. 머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걸요. 그가 원하는 건 단지 말 뿐이에요. 자유롭다고 불리워지기만 하면 족해요. 그게 그렇게 언짢으세요? 그가 했던 일이 그 정도 값어치는 되지 않아요? 아이 참, 그와 나는 몇년 동안 이 얘기를 해왔단 말이에요."

"그런 얘기를 몇 년 동안이나 해 왔다고?"

"네, 그래요. 하고 하고 또 했었죠. 그는 진작부터 그 얘길 꺼내려다가 아빠한테 충격을 줄까봐 계속 미루어 왔어요. 그 얘길 하라고 부추긴 건 저에요."

"그는 자유가 뭔지 몰라. 그는 로봇일 뿐이야."

"아빠, 아빠는 그를 잘 모르고 계세요. 그는 우리집에 있는 책을 죄다 읽었어요. 제가 아빠의 생각이 어떤지 들여다볼 수 없는 것처럼 그가 뭘 생각하는지도 알 수 없어요. 그와 얘기를 나누실 때면 그가 아빠나 저처럼 다양하고도 추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걸 보지 못하셨어요? 왜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셨어요? 그가 대화도중에 아빠하고 똑같은 식으로 반응한다면, 더 이상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쟎아요."

"법이 허용하지 않을 거다."
주인은 성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 이것 봐, 너!"
그는 앤드류를 향해서 거칠게 말했다.

"난 법대로 하지 않고서는 널 자유롭게 해 줄 수 없어. 그리고 만약 법정에 서게 된다면, 너는 자유뿐만 아니라 네 돈에 대한 권리도 잃게 될 거다. 그들은 네게 말할거야. 로봇은 돈을 벌 권리가 없다고. 그런 시시껄렁한 짓거리를 하다가 네 돈을 전부 잃고 싶으냐?"

"자유는 값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앤드류는 말했다.

"자유를 얻을 기회만으로도 제가 가진 돈 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7.

자유의 값을 따질 수 없는 것은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판사들도 금전적인 가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그러나 로봇이 자유를 사들이기에는 너무나 비싼 듯 했다. 앤드류의 자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지방 검사가 한 말은 간단했다.
'[자유]라는 말을 로봇에게는 적용시킬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는 이 말을 천천히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강조하듯 책상위에 놓인 손이 단어 하나하나를 말할 때마다 아래 위로 흔들렸다.
작은 아씨는 앤드류를 대신해서 발언권을 요청했다. 앤드류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그녀의 성명이 불리워졌다.

"아만다 로라 마틴 체니는 발언석에 서도 좋소."

"감사합니다, 판사님. 저는 변호사도 아니고 정확한 법률 용어도 모르지만, 제가 드릴 말씀에서 적당하지 않은 용어는 무시하시고 단지 말씀드리고자 하는 참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앤드류에게 자유란 과연 무슨 의미인가를 이해하도록 해 보세요. 보기에 따라서는 그는 지금 자유로워요.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 우리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앤드류가 자발적으로 하지 않을 일을 명령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한다면 어떤 명령이든 그에게 내릴 수 있어요.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엄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기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변함없이 성실하게 봉사하면서 더구나 막대한 돈까지 우리에게 벌어다 주었는데, 왜 우리가 그런 일방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건가요? 그가 우리에게 빚을 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설사 우리가 앤드류를 그런 강제적인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도록 법적인 조치를 취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봉사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를 자유롭게 해 준다는건 단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앤드류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겁니다. 그는 원하는 걸 모두 얻게 되지만 우리가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구요."

판사는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참고 있는듯이 보였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체니 부인. 본 사건의 경우는 적용할 수 있는 관련 법조항도, 그리고 판례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는 묵시적인 가정이 있지요. 상급 법원에서 기각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법 조항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섣불리 우리의 묵시적인 가정에 반하는 판결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로봇에게 말하겠습니다, 앤드류!"

"네, 판사님."

앤드류는 법정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고 판사는 그의 목소리가 사람과 비슷한 음색을 가진 것에 저으기 놀란 모양이었다.

"너는 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지, 앤드류? 그것이 왜 너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지 ?"

"노예가 되고 싶으신 적이 있습니까, 판사님?"

"그러나 넌 노예가 아니야. 넌 아주 훌륭한 로봇이야. 내가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똑똑한 로봇이지.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예술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로봇이야. 네가 자유로워진다면, 그 밖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지?"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판사님. 그러나 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지요. 이 법정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오직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를 원합니다."

판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 말이었다. 그는 판결을 내렸다.

"자유라는 개념과 자유로운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만큼 진보된 정신을 가진 존재라면 그게 무엇이든지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판결은 마침내 최상급 법원인 [세계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졌다.

8.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주인의 새된 목소리는 앤드류로 하여금 마치 두뇌회로가 누전된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주인은 말했다.
"난 네 돈 따윈 갖고 싶지 않다, 앤드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니까 받는 것일 뿐이야. 이제부터는 네가 직업도 선택하고 네 하고 싶은 일은 맘대로 해라. 난 더 이상 네게 명령을 내리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만 빼고. 그렇지만 법원의 결정에 따라 너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내가 지게 된다. 그건 알아주었으면 좋겠군."

작은 아씨가 끼어들었다.
"그렇게 성난 목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아빠. 그 책임이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쟎아요. 앞으로 신경쓰실 일은 없을 거예요. 로봇 공학의 세 가지 법칙이 있으니까요."

"그러면 어째서 그가 자유롭다는 거냐?"

앤드류가 말했다.
"인간도 자신들의 법칙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주인님?"

"논쟁하고 싶지 않다."

주인은 자리를 떴고, 앤드류는 주인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볼 뿐이었다.
작은 아씨는 종종 앤드류가 살고 있는 작은 집을 방문하곤 했다. 앤드류를 위해 지어진 그 집에는 물론 부엌도 욕실도 없었다. 단지 도서실과 작업실 겸 창고, 이렇게 방 두 개 뿐이었다. 앤드류는 그 전보다 훨씬 많은 주문을 받아서 열심히 일했다. 그의 집이 완전히 그의 소유가 될 때까지 돈을 열심히 벌었다.
어느 날 작은 주인이, 아니 조지가 왔다. 작은 주인은 법정에서의 판결 이후 자신을 절대로 작은 주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다.

"자유로운 로봇은 누구에게든 주인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어. 난 너를 앤드류라고 부를테야. 넌 나를 조지라고 불러."

그의 말은 명령처럼 들렸으므로 앤드류는 그를 조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작은 아씨는 언제까지나 작은 아씨였다.
어느 날 조지가 혼자 왔다. 그는 주인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아씨는 임종을 지키고 있지만 주인은 앤드류도 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주인은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지만 목소리는 아주 컸다.

"...앤드류.."

그는 가까스로 손을 쳐들었다.

"...앤드류... 조지야, 손 치우거라... 난 죽어가고 있을 뿐이야... 장애자가 아니다....앤드류...네가 자유로워서 나도 기쁘다. 이 말을 네게 하고 싶었다."

앤드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본 적이 없었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사람이 기능을 완전히 정지하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또한 자발적인 의사와는 상관없는 것이고 거역할 수도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앤드류는 그럴 때 무슨 말을 해야 적당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작은 아씨가 입을 열었다.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네게 마음을 여시지 않은 것 같구나, 앤드류.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그는 늙었고, 네가 자유를 원한다는 사실이 끝까지 그 분의 마음에 앙금으로 남았던 모양이야."

마침내 앤드류는 할 말을 찾아 냈다. 그는 말했다.
"주인님이 안 계셨더라면 저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작은 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