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終 - 어슐라 르 귄

Day 1,361, 20:55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Carl Jung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공공 건물들 중 한 군데의 지하실에는 방이 있다. 아니면 어느 널따란 개인 저택의 지하실일 수도 있다. 그 방에는 굳게 잠긴 문이 하나 있을 뿐 창문도 없다. 지하실에 달린 거미줄투성이의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한 줄기 희미한 빛이 그 방 판자벽의 갈라진 틈을 따라 날리는 먼지를 빼꼼이 비출 뿐이다. 그 작은 방의 한쪽 구석에는 덩어리지어 엉긴 채 딱딱하게 굳어서 악취를 뿜어 대는 자루걸레 두어 자루가 벽에 기대어 서 있고, 그 옆에는 녹슨 양동이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다. 바닥은 몹시 지저분하고 습기가 차서 축축한 것이 여느 지하실 창고와 다를 바 없다. 폭이 세 걸음에 너비는 두 걸음 정도인 방은, 청소 도구들을 넣어 두는 벽장이나 쓰지 않는 연장을 처박아 두는 다락에 불과하다.

그 방에 어린아이 한 명이 앉아 있다. 남자아이일 수도 있고 여자아이일 수도 있다. 겉보기에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열 살쯤 먹었다. 그 아이는 정신박약아이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공포와 영양 실조 때문에 점점 우둔해져서 마침내 버림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녹이 슨 양동이와 자루걸레에서 떨어진 곳에 구부정하게 앉은 채로 이따금 자기 코를 쥐거나 발가락 또는 생식기를 더듬더듬 만지작거린다. 아이는 자루걸레를 무서워한다. 자루걸레들이 무시무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눈을 꼭 감아 보지만 자루걸레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으며, 아무도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씩 -- 아이는 그때가 언제인지 혹은 그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 문이 요란스럽게 흔들리다 열리고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문간에 나타날 때가 있다. 그 중에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아이를 발로 차 일으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단지 놀랍고 메스꺼운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서둘러서 밥그릇과 물주전자가 채워지고 나면 문은 다시 굳게 잠기고 들여다보던 눈들도 사라진다. 문간의 사람들은 결코 입을 여는 법이 없지만, 내내 지하실에서 갇혀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밝은 햇빛과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그 아이는 이따금 말을 한다.

"전 좋아질 거예요!"

아이는 말하곤 한다.

"절 내보내 주세요. 전 다시 좋아질 거예요!"

결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아이는 밤이면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크게 소리내어 울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지 `으어어, 으어어'하는 일종의 신음 소리만 낼 뿐이며 그 소리마저 점차 뜸해져 간다.

너무나도 야윈 아이의 장딴지에는 살이라곤 아예 없고, 배만 불룩 튀어나왔다. 아이는 기름과 옥수수가루 반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아이는 벌거벗은 채이다.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헐어서 상처투성이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음을 모두들 알고 있다. 직접 와서 본 사람도 있고, 단지 그런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들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혐오스러울만큼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여덟 살 내지 열두 살쯤 되면, 그러니까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되면 그 사실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지하실의 아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지만, 때로는 나이 든 어른이 오기도 하며, 한번 더 보려고 다시 오는 이들도 꽤 있다. 아무리 설명을 그럴듯하게 들었다고 해도 젊은 구경꾼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언제나 충격을 받고 가슴 아파한다. 자신들이 그 아이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전해 들었던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화를 내고, 분노를 느끼며, 무력감에 빠져든다. 그 비참한 아이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아이를 그 지독한 곳에서 밝은 햇살이 비추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다면,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잘 먹이고 편안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정말로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한다면, 당장 그 날 그 시간부터 지금껏 `오멜라스'가 누렸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계약인 것이다. 단 한가지의 사소한 개선을 위해서 `오멜라스'에 사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멋지고 고상한 매일매일의 삶을 맞바꾸어야만 한다는 것, 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행복을 내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하실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계약은 엄격하며 절대적인 것이다. 그 아이에게는 친절한 말 한마디조차도 건네면 안된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서 이러한 끔찍한 모순에 직면했을 때, 대개의 젊은이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화가 치밀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몇 주일 혹은 몇 년씩 그 아이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설령 그 아이를 풀어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약간 더 따뜻해지고, 약간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아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주 조금밖에 즐거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쁨을 알기에는 너무나 퇴보했고 우둔해진 것이다. 더욱이 그 아이는 너무나 오랫동안 자유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해 온 것이다. 너무도 황량하게 지내 왔기 때문에 인간적인 대우에 제대로 반응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런 상태로 지내 왔기 때문에 아이를 보호해 주고 있는 벽과, 그 아이의 눈에 익숙해진 어둠과, 깔고 앉은 배설물이 사라진다면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느낄 것이다.

그 아이에 대한 의롭지 못한 행위에 가슴 아파하면서 흘리던 눈물은 현실이 보여 주는 이토록 끔직한 정의를 알아차리고 수긍하기 시작할 때면 메말라 간다. `오멜라스' 사람들의 빛나는 삶의 원천이야말로 그들의 눈물과 분노, 관용을 베풀려는 의도, 그리고 무력한 수긍에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김 빠지고 무책임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지하실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연민이란 것을 알고 있다. 고상한 취향으로 지어진 건축물들, 심금을 울리는 음악, 심오한 과학을 가능케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그 아이의 존재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그토록 자애롭게 대하는 것도 바로 그 아이 때문이다.

만약 그 아이가 어둠 속에서 코를 훌쩍이며 비참하게 앉아 있지 않다면, 피리를 불던 아이는 더이상 즐거운 음악을 연주할 수 없을 테고, 또 다른 아이들이 말 잔등에 보기 좋게 올라탄 채 여름날 첫 아침의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경주를 벌이려 줄지어 서 있을 수 없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이제는 좀 더 납득이 가는가? 그러나 아직도 할 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다. 이 이야기야말로 진정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따금씩 지하실의 아이를 보고 난 청소년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에 찬 채로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그들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때때로 좀더 나이든 남자나 여자들도 하루 이틀쯤 침묵에 잠겨 있다가는 집을 떠난다. 그들은 길로 나가서는 거리를 따라 홀로 걸어 내려간다. 그들은 한참을 걸은 끝에 `오멜라스'시의 아름다운 입구를 곧장 빠져나간다. `오멜라스'의 농장들을 가로질러 계속 걸어간다. 소년이건 소녀건, 나이든 남자건 여자건 간에 모두들 혼자서 간다.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마을의 한 길을 따라, 창문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 사이를 지나, 들판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 간다. 그렇게 그들은 혼자서 서쪽으로, 아니면 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간다. 그들은 계속 걸어간다.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둠 속으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가는 곳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 행복한 도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그곳을 결코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