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방정식 1 -탐 갓윈

Day 1,362, 07:18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Carl Jung

탐 갓윈(Tom Godwin) 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상한 낌새는 전혀 없었다. 단 하나, 생체 감지기의 자그맣고 하얀 바늘을 제외하고는. 조종실에는 혼자뿐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들리는 것은 희미한 엔진 소리뿐이지만, 그러나 감지기의 바늘은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모선인 스타더스트호에서 발진할 때에는 0을 가리키고 있던 바늘이 한 시간쯤 지난 지금은 분명히 기어올라가 있다. 조종실 건너편 화물칸에 무언가가 있다. 분명히 열을 방사하고 있는 어떤 생물체가 저기에 숨어 있다.

감자기에 포착된 물체가 무언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건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이었다.

그는 조종석 뒤쪽으로 등을 기대고 천천히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랫동안 긴급연락선의 조종사로 일해 왔던 그는 항상 생명 위협과 맞닥뜨리며 살아온 까닭에 다른 사람의 죽음을 접해도 무덤덤하게 보아 넘길 수 있도록 감정이 무디어져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가 할 일은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 다른 해결책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아무리 닳고닳은 긴급연락선 조종사라고 하지만, 터덜터덜 화물칸으로 걸어가서 마치 쓰레기를 갖다 버리듯이 생판 모르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건 법이니까. 우주 항행법 제 8장 제 12절에는 참으로 무정하고 단호하게 우주의 철칙이 한 문장으로 명시되어 있다.

"긴급 연락선에 탑승한 밀항자는 발견 즉시 제거되어야 한다."
그건 어떠한 호소나 항변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 원칙이었다.

이 냉엄한 조항은 그러나 인간들의 무자비함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주 개척자들의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극약처방이었다.

초광속 항행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류의 우주탐험 범위는 은하계 변경까지 점차 넓어졌고, 사간이 지날수록 우주 곳곳에는 미지의 별에서 한계상황과 싸우며 힘겹게 개척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은하계 구석의 외딴 별에 고립된 탐사대나 개척 식민지들은 지구와의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였다. 아득한 우주의 심연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거대한 우주선 모선은 인류 전체의 지혜와 노력이 총 결집된 눈부신 성과였다. 초광속 우주선 한 척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다. 따라서 우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개척지들마다 일일이 들러가며 필요한 지원이나 보급 활동을 펼 만큼 많은 수의 모선을 만들 수가 없었다.

모선의 주임무는 새로이 개척된 외계 행성에 이주자들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고, 그런 대규모 식민지들만 정기적으로 방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선 모선들의 운항 계획표는 아주 빡빡한 것이었고, 항행 도중에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어 예정에 없던 다른 개척 행성으로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운항계획표가 엉망이 되어 버려 지구와 다른 모든 우주개척지들과의 연락체계는 완전히 빠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 우주선 모선이 방문할 계획이 없는 식민지에서 긴급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별도의 비상 연락 방법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긴급연락선'이었다. 긴급연락선은 조그맣게 접혀질 수 있어서 모선에 실어도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로켓 엔진에다 가벼운 경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긴급연락선은 최소한의 연료만을 소비하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우주선 모선은 보통 4대의 긴급연락선을 탑재하고 다녔는데, 항로 주변의 개척 행성이나 다른 우주선에서 긴급 호출이 있을 경우 보급품이나 필요 인원을 긴급연락선에 실어 보내는 것이다. 긴급연락선은 초광속 추진이 불가능한 1회용 장비였다. 우주선 모선은 예정된 항로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이 긴급연락선만을 투하한 채 우주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주선 모선에 장착된 엔진은 액체 연료를 사용하는 재래식 로켓이 아니라 핵 에너지 변환장치였다. 긴급연락선처럼 작은 우주선에 달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한 물건이었다. 우주선 모선들은 긴급연락선용의 액체 연료를 일정량 싣고 다녔지만 제한된 공간이나 무게 때문에 넉넉한 양은 아니었다. 연료는 아주 정밀하게 미리 계산되어 실려졌다. 꼭 필요한 만큼만. 컴퓨터는 조종사, 화물, 긴급 연락선의 무게를 목적지까지의 비행 경로와 함께 계산하여 연료의 최소 필요량을 한 방울의 오차도 없이 산출해 내었다. 물론 그 방정식에는 `밀항자의 체중'같은 변수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스타더스트호는 우주를 항행하던 도중에 우덴 행성의 개척 기지들 중 하나로부터 긴급 구호 요청을 받았다. 그곳에 있는 여섯 명의 탐사대원들은 `칼라'라는 녹색의 곤충에 의해 지독한 열병에 걸려 있었는데, 때마침 엄습한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 때문에 기지 전체가 풍지박산이 나면서 치료 혈청들이 모두 유실되고 말았던 것이다. 스타더스트호는 이 구호 요청을 관례대로 처리했다. 혈청을 실은 긴급연락선을 발사하고는 예정된 항로에서 한 치도 벗어남 없이 우주공간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지금, 긴급연락선의 계기가 뭔가를 말하고 있다. 화물칸에 혈청 말고도 뭔가가 있다고 한다.

그는 화물칸의 좁고 하얀 문 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 안에 살아 있는 인간이 있다. 이젠 조종사가 자신을 발견해도 쫓아내기에는 너무 늦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이다. 밀항자에겐 정말 너무 늦었다. 끔찍한 일이지만.

조종사에게 발견되는 순간, 밀항자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긴급 연락선이 대기권에 진입하여 감소하게 되면 밀항자의 몸무게 때문에 착륙하기 훨씬 전에 연료탱크가 바닥이 날 것이다. 그리하여 1천 피트나 1만 피트 상공에서 속수무책으로 추락하기 시작할 것이다. 조종사와 밀항자는 긴급연락선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져 박살이 나고, 금속과 플라스틱, 살점과 핏덩이들의 잔해가 한데 뒤엉킨 채 처참한 종말을 맞을 것이다. 밀항자는 긴급연락선에 올라탄 순간 자신의 시한부 인생 계약서에 서명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긴급연락선의 조종사와 혈청을 기다리는 탐사대원 여섯 명의 목숨까지 함께 담보로 삼고.

생체감지기의 하얀 바늘이 다시 꿈틀거렸다. 그는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불청객에게나 그 자신에게나 몹시 끔찍한 일이다. 빨리 해치울수록 좋다. 그는 조종실을 가로질러 걸어가서 작고 하얀 문 앞에 우뚝 섰다.

"나와!"

응응거리는 기계 소리들보다도 더 거칠고 냉엄한 목소리였다.

안쪽에서 살금살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다가 곧 조용해졌다. 밀항자가 한쪽 구석으로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감이 사라지면서 들키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기 시작하는 듯했다.

"나오라고 했잖아!"

그는 밀항자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긴장한 채 문을 주시하면서 손을 옆구리에 찬 총 가까이 가져갔다.

문이 열렸다. 밀항자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나왔다.

"알았어요. 항복이에요.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밀항자는 어린 소녀였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의 손이 총으로부터 툭 떨어졌다.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밀항자는 남자가 아니었다. 10대 소녀가 작고 하얀 집시 샌들을 신고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 갈색 곱슬머리 소녀의 키는 겨우 그의 어깨를 넘을락말락했다. 달콤한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소녀는 약간 기우뚱하게 서서 미소를 짓고 있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소녀의 눈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두려움도 없이 그의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거요?' 라고 만약 낮고 탁한 남자 목소리가 질문을 했다면 그는 즉시 행동을 취함으로써 대답했을 것이다. 일단 밀항자의 신분증명 기록을 빼앗고는 에어록 안으로 들어가도록 명령했을 것이다. 밀항자가 반항하면 그는 총을 발사했을 것이다. 그건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고, 1분 안에 밀항자의 몸은 우주공간으로 튕겨나갔을 것이다. 밀항자가 남자였다면 말이다.

그는 조종석으로 돌아왔다. 소녀에게 손짓을 해서 벽쪽에 있는 계기판 아래 상자에 앉도록 지시했다. 소녀는 순순히 따랐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소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못된 장난을 하다 들킨 강아지처럼 죄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아무 말씀 안하시네요. 잘못했어요. 어떻게 되는 거죠? 벌금을 내야 되나요, 아니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왜 긴급연락선에 숨어들었지?"

"우리 오빠가 보고 싶어서요. 오빠는 우덴에 있는 탐사기지의 대원이에요. 오빠가 일하러 지구를 떠나고 나서 10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어요."

"원래 스타더스트호를 타고 있을 때의 목적지는 어디였나?"

"미미르요. 제가 일하러 가는 곳이에요. 아빠는 항상 집에 돈을 부쳤고 저를 위해서 언어학 특별과정의 수업료를 대 주었어요. 저는 생각보다 빨리 그 과정을 졸업했어요. 그리고선 미미르에 일자리를 얻은 거에요. 게리오빠는 1년 뒤에나 우덴 일을 마치고 미미르로 올 수 있어요. 그전에는 오빠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여기 숨어들었던 거에요. 여길 보니까 공간도 충분했고 벌금을 낼 각오는 진작 했어요. 또다시 1년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비록 규칙을 어기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요."

`규칙을 어기는 줄은 알고 있었어요.' 소녀가 법에 무지하다고 탓할 수는 없다. 소녀는 이제껏 지구에서 살아왔고 따라서 우주 개척지의 법이 그 법을 탄생시킨 환경만큼이나 거칠고 무자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소녀처럼 개척지의 가혹한 환경에 무지한 사람들을 위해 스타더스트호의 긴급 연락선 격납고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붙어 있다. 누구든 신경 써서 살펴보기에는 너무도 평범한 팻말이.

"승무원 외 절대 승선 금지!"
"오빠는 아가씨가 스타더스트호를 타고 미미르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예, 지구를 떠나기 한 달 전에 오빠에게 전보를 쳤어요. 졸업했다는 얘기랑 미미르에 한 1년 정도 일할 자리를 얻었다는 얘기를요. 오빠는 그때쯤에 승진해서 미미르로 올 예정이거든요. 오빠는 한 곳에 1년 이상 머물지 않아도 되요."

우덴에는 탐사 기지가 두 군데 있었다.

"오빠 이름이 뭐지?"

"크로스, 게리 크로스예요. 오빠는 우덴 제 2기지에 있어요. 주소에 그렇게 써 있었어요. 아저씨, 오빠를 아세요?"

"혈청을 요청한 곳은 제 1기지였다. 제 2기지는 서쪽 바다를 가로질러 8천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아니, 난 모르는 사람이야."

그는 계기판으로 몸을 돌려 약간 감속을 줄였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결국 닥쳐올 결말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갑자기 긴급연락선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소녀의 몸은 무기력하게 흔들려 그녀가 앉은 상자 위로 반쯤 들려졌다.

"어... 속도를 빠르게 하셨죠? 왜 그렇게 했어요?"

그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연료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우주선에 연료가 많지 않은가요?"

그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소녀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는 밀항자를 어떻게...... 처리하세요? 저는 아무도 안볼 때 살짝 들어왔어요. 누군가 우덴으로 보낼 보급품 지급 명령서를 가지고 보급품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제가 마침 거기에 있었거든요. 청소부 여자애가 겔란 태생이라고 그 애랑 겔란어를 연습하고 있었어요. 떠날 준비가 다 되고 아저씨가 들어오시기 직전에 몰래 화물칸에 숨어들었어요. 솔직히 말하지만 이건 순간적으로 저지른 일이에요. 오빠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아저씨가 그렇게 무섭게 쏘아보시니까 아무래도 아주 잘못한 일인 것 같네요. 하지만 전 얌전한 모범 죄수가 될께요.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소녀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벌금이 아주 비싸더라도 다 낼 수 있어요. 요리도 잘하고 바느질도 잘해요. 뭐든지 자질구레한 일은 다 할 수 있어요. 간호도 약간 할 수 있구요."

그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우덴 기지에서 요청한 보급품이 무엇인지 아니?"

"아니요. 그건 왜요? 탐사 장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왜 소녀는 음흉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아닌 것일까?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는 범죄자라면, 그래서 낯선 개척 행성에 숨으려고 밀항한 사람이었다면, 혹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새로운 식민지에 숨어들려는 기회주의자였다면, 아니면 어린 양들을 구원할 생각으로 개척지 포교에 나선 괴짜 전도사였다면.

긴급 연락선의 조종사를 하다 보면 일생에 한 번쯤은 그런 밀항자와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뒤틀려진 인간, 비열하고 이기적인 인간, 잔인하고 위험한 인간을. 그러나 푸른 눈을 하고 귀여운 미소를 짓는 소녀는 결코 아니다. 기꺼이 벌금을 내겠다고, 그리고 오빠를 보기 위해 어떤 궂은 일이라도 하겠다는 그런 소녀는 아니다.

그는 조종계기판으로 돌아앉았다. 스타더스트호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송신 스위치를 올렸다.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마저 사그라지기 전에는 소녀를 무정하게 에어록에 밀어 넣을 수가 없다. 짐승을 다루듯이. 아니면 사나이를 다루듯이. 대기권에 돌입하기 전에 긴급연락선의 감속을 잠시 줄이는 것이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통신기로부터 목소리가 들렸다.

"스타더스트다. 신분을 밝혀라."

"긴급연락선 34G11호의 바튼. 비상사태다. 델하트 사령관을 대 주시오."

접속 회선이 바뀌는 동안 희미하게 소음이 깔려 나왔다.

소녀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더 이상 미소가 감돌고 있지 않았다.

"나를 잡으러 오라고 부르실 건가요?"

통신기에서 찰칵 소리가 났다. 감이 멀게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사령관, 긴급연락선에서 교신 요청입니다."

소녀는 걱정스럽게 재차 물었다.

"나를 잡으러 올 건가요? 결국 오빠는 볼 수 없는 거예요?"

"바튼인가?"

델하트 사령관의 퉁명스럽고 거친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비상사태라니, 뭔가?"

"밀항자입니다."

"밀항자라고?"

약간 놀란 목소리였다.

"예삿일은 아니군. 그렇지만 비상호출이라니. 시간 안에 밀항자를 발견했으니 위험은 없을 것이고, 그냥 처리하면 되지 않나? 그리고 운항기록실에 통보만 하면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연락이 갈 테니까."

"그 때문에 연락한 것입니다. 밀항자는 아직 승선중이고 상황이 좀... 미묘합니다."

사령관은 성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미묘하다니, 무슨 소린가? 자네, 규칙은 잘 알고 있겠지. 긴급연락선 안에서 발견되는 밀항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우주선 밖으로 내보내야 돼."

소녀는 숨을 헉 멈추더니 더듬거렸다.

"무슨... 뜻이죠?"

"밀항자는 소녀입니다."

"뭐라고?"

"오빠를 만나 보겠다고 몰래 탔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게다가 상황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 알았다."

사령관의 목소리는 더 이상 퉁명스럽지 않았다.

"날 왜 불렀지? 어떤 희망을 기대한 건가?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네. 스타더스트는 예정대로 운항해야 해.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어. 나도 자네의 심정을 잘 이해하겠다. 하지만 자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네. 그렇게 해야만 해... 운항기록실로 연결해 주지."

통신기가 희미하게 칙칙거렸다. 그는 소녀 쪽으로 돌아앉았다. 소녀는 긴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경악한 표정이었다.

"무슨 뜻이죠. 그렇게 해야만 한다니. 절 우주선 밖으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게 무슨 말이죠? 정말 그렇게 하는 거예요? 저를 우주선 밖으로 내보내는 거예요? 그럴 순 없어요. 정말로 뭐라고 한 거죠?"

거짓말로 잠시나마 안심하도록 해 주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었다. 오히려 잔인한 일이 될 것이다.

"... 아가씨가 방금 들은 그대로야."

"안돼요!"

소녀는 마치 그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공격을 막아내려는 듯이 두 팔을 반쯤 들어올린 채로. 소녀의 눈은 불신과 거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돼."

"아니에요. 농담이죠? 저를 놀라게 하려고 그러시는 거죠? 미친 짓이에요. 그럴 순 없어요!"

"미안하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미리 얘기해 주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나는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한 거야. 스타더스트호에 먼저 연락을 해야만 했어. 사령관의 이야기는 아가씨도 들었지."

"그래선 안돼요. 우주선 밖으로 나가면 전 죽어요."

"알고 있어."

소녀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자신의 눈에 어린 믿기지 않는다는 거부감을 그에게서도 찾아보려는 것 같았다. 소녀의 얼굴에 천천히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알고... 있다구요?"

소녀는 말을 더듬었다. 얼이 빠진 듯한 괴상한 모습이었다.

"그래야만 돼."

"정말인가요? 그렇게 해야만 돼요?"

소녀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축 늘어졌다. 조그맣고 낡은 인형처럼 흐늘거리고 있었다. 저항과 거부감이 갑자기 빠져나가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나를... 죽게 할 작정이에요?"

"미안해."

그는 다시 침통하게 말했다.

"아가씨는 내 심정을 모를 거야. 이건 규칙이야. 전 우주의 누구도 예외없이 지켜야만 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나는 죽을 만한 죄를 짓지는 않았어요. 난 안했어요......"

그는 힘없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알고 있어. 아가씨는 죽을 죄를 짓진 않았지."

"긴급연락선!"

통신기에서 금속성의 삑삑 소리가 났다.

"운항기록실이다. 밀항자의 신분증명 자료를 보내라."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소녀 앞에 섰다. 소녀는 의자의 모서리를 꽉 움켜쥐었다. 갈색 머리 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술이 큐피드의 활처럼 새빨갛게 보였다.

"지금... 인가요?"

"아가씨의 신분증명 기록이 필요해."

소녀는 의자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두려움에 떨면서 목에 걸린 플라스틱 원판의 고리를 초조하게 더듬거렸다. 그는 소녀 대신 손을 내밀어 고리를 푼 다음 원판을 가지고 말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자료를 보내겠소. 기록실. 신분증명번호 T-8-3-7......"

"잠깐만."

기록실에서 말을 끊었다.

"이건 물론 회색 카드에 기입할 내용이겠죠?"

"그렇소."

"실행시간은?"

"나중에 알려 주겠소."

"나중이라니, 무슨 소립니까? 밀항자의 사망시각은 발견 즉시가 아니오?"

그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먼저 신분증명 내용을 받아 주십시오. 밀항자는 어린 여자아이고 지금 우리가 말하는 걸 그대로 듣고 있소. 이해하겠습니까?"

충격 뒤에 오는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기록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합니다. 계속하십시오."

그는 원판을 읽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오래도록 이 피할 수 없는 일을 지연시키려고 천천히 읽었다. 소녀가 이제껏 겪어 보지 못했을 이 절망적인 공포를 견디도록 1초라도 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체념과 감내 속에서나마 소녀를 도우려고 애썼다.

"번호 T8374-Y54. 성명, 마릴린 리 크로스. 성별, 여성. 출생일, 2160년 7월 17일..." 18살밖에 안 되었다... "신장, 5피트 3인치. 체중, 110파운드..." 너무나 가볍다. 하지만 얇은 물거품 정도밖에 안되는 긴급연락선에는 치명적이다... "모발, 갈색. 눈, 푸른색. 피부, 백색..."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혈액형, O형. 목적지, 미미르 포트 시티..." 무의미한 자료들이다......

기록을 다 불러 준 뒤 그는 말했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소."

그는 다시 소녀를 향해 돌아섰다. 소녀는 벽에 등을 기대어 웅크리고 앉아서 무감각한, 그러나 놀라우리만치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