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살을 맞은 사나이 3

Day 1,359, 04:11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Carl Jung

13.

변호사로서의 명성이 꽤 알려져 있는 편인 폴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침내 [합중국 로봇 및 기계인간]회사의 사장 하레이 스미스-로버트슨이 상당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의 어머니는 회사의 최초 설립자 가문이었으며 그 자신의 이름에 들어있는 이음표(하이픈)가 그런 혈통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이제 은퇴할 나이가 가까워진 그는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로봇의 권리와 관련된 일로 소비했다. 그는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에다 머리 윗부분에는 기름으로 잘 손질된 회색빛 머리를 얹고 나왔다. 앤드류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는 언뜻언뜻 적개심이 내비치고 있었다.

앤드류가 말했다.
"약 일 세기 전에 저는 이 회사의 머튼 맨스키씨한테 얘기를 들었습니다. 양전자 두뇌회로를 구성할 때 적용하는 수학은 너무도 복잡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산출되는 결과도 근사치 밖에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두뇌의 용량이나 능력도 완전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건 일 세기 전의 얘기지."

스미스-로버트슨은 잠시 망설이다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아시겠소? 지금 우리가 만들어내는 로봇들은 아주 정확한 두뇌에다 제각기 할 일에 대해서만 숙달된 훈련을 받은 채 나온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폴이 대답했다. 그는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회사에서 정정당당하게 나오는지를 확인하려고 앤드류와 같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고객이 로봇을 구입하려 할 경우엔, 그 로봇에게 시킬 일을 미리 설명해 달라고 요구한다지요?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라고 한 다음 로봇을 그 일에 매우 적합하게 훈련시켜 판매한다고 들었습니다."

스미스-로버트슨이 말했다.
"그렇소.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한 로봇이 맡은 일을 제대로 못해내면 고객들이 불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앤드류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당신 회사에서는 나처럼 유연하고 적응력이 좋은 로봇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모양이군요."

"만들지 않아."

"책을 쓰면서 자료들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현재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로봇중에서는 제가 가장 오래 된 로봇입니다."

"현재까지는 그렇지."

스미스-로버트슨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너같은 로봇은 존재하지 않을 거야. 25년이 지나면 로봇은 쓸모가 없어진다. 다시 회수해서 처분하고 새로운 모델로 교체되는 거지."

"말씀하신대로 현재 생산되는 로봇중에서 25년 이상 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폴은 열심히 얘기를 계속했다.

"그렇지만 앤드류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지난 세월동안 스스로 의지해왔던 자신의 전자두뇌에 충실히 따르는 앤드류가 말문을 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유연성이 뛰어난 로봇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신다면, 그 때문에 귀 회사에서 저를 특별히 대우해 주실 의향은 없습니까?"

"천만에."
스미스-로버트슨은 차갑게 대꾸했다.

"너의 특별함은 우리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성가신 것이야. 옛날에 어쩌다가 너를 아주 팔지만 않았어도, 그냥 임대만 해 주었어도 이미 오래 전에 다시 회수해서 처분해 버렸을 텐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나는 지금 자유 로봇이고, 나의 소유주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지금 내 소유물에 대한 사후 서비스로서 내 몸을 교체해 주기를 요구하는 겁니다. 소유자의 동의나 허락 없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체를 할 수 없지요. 요즈음은 로봇을 판매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주로 임대를 하기 때문에 소유자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지만, 제가 마틴 집안에 올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로버트슨은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벽에 걸린 입체영상이 앤드류의 눈에 들어왔다. 모든 로봇공학자들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수잔 캘빈의 데드마스크였다. 그녀가 죽은지는 거의 이백년 가까이 되었지만 앤드류는 책을 쓰면서 알게 된 지식으로 그 선구자를 잘 알고 있었다. 생생한 입체영상으로 떠 있는 그 얼굴이 결코 낯설지 않은 앤드류에게는, 마치 살아있는 동안에 만난 적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스미스-로버트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교체한단 말인가? 만약 널 교체한다면 소유주라는 너 자신이 사라져 버리는 건데?"

그는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까다로운 건 아닙니다."

폴이 끼어들었다.

"앤드류의 독특한 개성은 바로 양자두뇌에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은 로봇이 처음 만들어진 뒤에는 다시 새것으로 교체한다거나 하는 일 없이 계속 작동하는 거지요. 따라서 앤드류 자신의 소유주는 엄밀히 말하면 양자두뇌인 겁니다. 신체의 다른 부분은 로봇의 개성을 건드리는 일 없이 교체가 가능한 것이지요. 왜냐 하면 그런 부분들은 양자두뇌의 소유물인 셈이니까요. 즉 앤드류는 자신의 두뇌에다 새 몸뚱이를 달고 싶은 겁니다."

"맞습니다."
앤드류가 담담한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그는 스미스-로버트슨에게 얼굴을 돌렸다.

"당신 회사는 안드로이드를 생산하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겉모양이 인간과 아주 흡사하고 피부 살결이나 감촉까지도 거의 똑같은 것을 말입니다."

스미스-로버트슨이 대답했다.
"그렇다.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있지. 합성된 섬유 피부와 힘줄로 만들어졌는데 일을 아주 잘하지. 사실 인공두뇌 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금속을 쓰지 않다시피해서 만들어 냈다. 하기야 움직이는 건 금속제 로봇과 별 차이가 없지만. 투박하고 거칠긴 마찬가지야."

폴은 흥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군요. 시장에 내 놓은지 얼마나 됐죠?"

"내놓지 않았소. 금속제 로봇보다 값이 훨씬 비쌀 뿐더러 시장조사 결과도 부정적이었소. 너무 인간을 닮아서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을 거라더군."

앤드류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그 기술을 계속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요구하러 온 것입니다. 내 몸을 유기질 로봇, 즉 안드로이드로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폴은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맙소사."

스미스-로버트슨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건 불가능해!"

"왜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나는 얼마든지 돈을 지불할 것입니다."

"우린 더 이상 안드로이드를 만들지 않아."

"안드로이드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폴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안드로이드 완제품을 새롭게 생산하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아무튼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것은 공공 정책에 위배되는 일이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여간 우린 안드로이드를 만들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안 만들거고."

폴은 목을 가다듬고 말을 시작했다.
"스미스-로버트슨 씨. 앤드류는 자유 로봇이며, 로봇의 권리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 점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이오."

"이 로봇은 자유 로봇으로서, 스스로 옷을 입고 다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 로봇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조항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그렇듯 구속력이 약한 법률로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까지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우리는 그 일의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소. 당신 부친의 법률사무소는 불행하게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진 못했더군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분명히 법률 위반이며 또 엄격한 법적 처벌이 따르는 일입니다."

"무슨 얘길 하는 거요 ?"

"나의 고객인 자유로봇 앤드류 마틴은 -- 그는 지금 우리 법률회사의 주요 고객중 하나입니다 -- [합중국 로봇 및 기계인간] 회사에 정식으로 청구하는 겁니다. 회사에서 처음 판매할 때 약속했던 것처럼, 소유자가 25년이상 사용한 로봇을 교체해 달라고 말입니다. 사실은 회사쪽에서 먼저 교체해 주겠노라고 해야 정상이지요."

폴은 미소를 띤 채 청산유수처럼 막힘없이 말을 엮고 있었다.
"내 고객의 양자두뇌가 내 고객의 신체를 소유한 주인입니다. 그 신체의 연령은 분명히 25년이 넘었지요. 소유자인 양자두뇌가 신체를 안드로이드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더구나 어떤 비용이든 지불하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요구를 거절한다면 나의 고객은 부당하게 계약위반을 당하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소송을 걸 겁니다.
만약 일반 대중들의 여론이 로봇의 이런 정당한 요구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면, 당신 회사 역시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지요.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로봇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당신 회사에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로봇을 두려워하던 이전 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당신네 회사가 가진 막대한 부와 권력, 전 세계의 로봇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독점적인 지위 등에 대해 사람들은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반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귀 회사가 쓸데없이 소송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나의 고객은 부유하며 또 앞으로 몇 세기라도 살 수 있고 그 동안에 법정 투쟁을 스스로 그만 둘 의향이 전혀 없습니다."

스미스-로버트슨의 얼굴이 점점 벌개졌다.

"당신 지금 날 협박하..."

"절대로 협박이 아닙니다. 만약 내 고객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좋을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아무런 이의를 달지않고 즉시 물러갈 것입니다....그러나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법으로 보장된 우리의 권리이니까요. 당신은 결국 패배하고 말 겁니다."

"잠깐잠깐 --"

"나는 당신이 요구에 응해 주리라 믿습니다. 좀 망설여지겠지만 마침내 수락할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내 고객의 신체를 유기 조직으로 교체하는 동안, 만약 양자두뇌에 아주 약간이라도 손상을 입힌다면 나는 그 즉시 법정 투쟁에 들어가 당신 회사가 패소할 때까지 쉬지 않을 겁니다. 나는 필요하다면 조직적인 여론 공작을 펴서라도 당신 회사에 대항할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내 고객의 양자두뇌 핵심 부품인 백금-이리듐 회로에 아주 조그만 흠이라도 간다면 말입니다."

폴은 앤드류를 돌아보았다.

"이 모든 것에 동의하는거지, 앤드류 ? "
앤드류는 일 분 가까이 머뭇거렸다. 거짓말, 아니면 공갈이나 다름없는 말에 동의해야 할 것인가. 사람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고 있지 않나. 그러나 물리적인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앤드류는 스스로에게 확인하듯 말했다. 물리적인 해가 아니다.

그는 마침내 어정쩡하고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14.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며칠 동안, 그리고 몇 주 동안, 마침내 몇 달 동안 앤드류는 어쩐지 신체의 모든 부분이 자기 몸이 아닌듯한 거북함에 시달렸다. 가장 간단한 동작 한 가지를 하려 해도 꽤나 성가신 노력을 기울어야 했다.

폴은 흥분했다.
"그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어, 앤드류. 소송을 걸어야겠다."

앤드류는 매우 천천히 얘기를 했다.
"안 됩니다. 당신이 제시할 수 있는 즈-즈-즈-증거가 없어요."

"증거가?"

"증거가. 나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냥 단순한 저-저-저-적응기간입니다."

"적응기간이라구?"

"그렇습니다. 내 드-드-드-두뇌는 이런 신체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요."

앤드류는 자기 자신의 두뇌를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교체 작업은 성공적이었으며, 단지 양자두뇌가 유기 조직과 조화를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는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직 인간이 아니다! 얼굴이 너무 딱딱하다. 또 동작은 너무 조심스럽다.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마구 움직여야 하는데 동작 하나하나를 너무 신중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아무튼 이제 적어도 금속제 몸뚱이에 옷을 걸쳐 입어야 하는 어색함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앤드류는 말했다.
"하던 일을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폴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별 탈이 없었다는 얘기로군. 근데 또 무슨 일을 하려고? 딴 책을 또 쓰려고?"

"아닙니다."

앤드류는 진지하게 얘기했다.
"나는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기에는 너무 오래 사는 존재입니다. 처음에 나는 예술가로서 일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역사학자가 된 적이 있었고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로봇생리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로봇심리학자를 말하는 거야?"

"아닙니다. 그건 양자두뇌를 다루는 학문이지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로봇생리학자는 양자두뇌에 딸린 신체를 연구하는 겁니다."

"그럼 로봇공학자 아닌가?"

"로봇공학자는 금속제 로봇을 연구하지요. 나는 유기질 조직을 갖춘 안드로이드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론 아직 저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지요."

"네가 해보겠다는 분야는 너무 대상이 좁군."

폴은 생각에 잠겨 얘기했다.
"예술가라면 모든 개념들이 너의 것이지. 역사학자라면 모든 로봇들을 다룰 수 있지. 그러나 로봇생리학자라면, 너는 너 자신밖에는 연구할 대상이 없쟎아."

앤드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요."

앤드류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공부했다. 생물학에 대해서는 물론, 자연과학 전반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빈약했던 것이다. 독서에 열중한 그의 모습은 이내 도서관 안의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옷을 입은 채 몇 시간씩 자료를 뒤적이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따금 그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앤드류는 그의 집에다 연구실을 따로 하나 차렸다. 그의 장서도 갈수록 늘어갔다.
몇 년이 흐른 뒤, 어느 날 폴이 앤드류를 찾아왔다.

"앤드류, 애석하게도 너와 같은 로봇의 역사가 끝나게 되었다. 합중국 로봇 회사가 새로운 경영전략을 세운 모양이야."

폴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눈을 인공 안구로 바꿔 달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폴이 앤드류 쪽으로 가까워진 셈이다.

"어떤 전략입니까?"

"그들은 거대한 양자두뇌를 만들어서 그 중앙 컴퓨터가 초단파를 통해 어느 곳에있는 로봇이든 원격 조종,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 작정인가 보더군.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로봇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거야. 로봇들은 따로 자신의 두뇌를 가지지 않고 중앙 컴퓨터의 손발 노릇을 하는거지. 둘은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그게 더 효율적입니까?"

"회사에선 그렇다고 주장하는군. 스미스-로버트슨이 죽기 전에 세워 놓은 새로운 방침이라고 하더구만. 그런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너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너와 같은 문제를 일으킬 로봇은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심산이지. 그래서 두뇌와 신체를 분리한 거야, 틀림없어.
양자두뇌는 이제 애초부터 신체가 없으니까 자기 몸을 바꿔달라고 하지도 않을테고, 로봇들은 두뇌가 없으니까 당연히 아무 생각이 없을테고.
놀랍군, 앤드류. 네가 로봇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말이야. 합중국 로봇 회사가 좀 더 정교하고 전문화된 로봇을 만들도록 고무했던건 너의 예술적 솜씨였고, 법률이 로봇의 권리를 최소한이나마 보장하도록 만든 것도 너의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 이제는 로봇 회사가 두뇌와 신체를 분리하도록 만든 것도 네가 안드로이드 신체를 가지려고 고집한 덕분이니까, 안 그런가?"

"그 회사는 결국에 가서는 아주 거대한 전자두뇌를 하나 만들어서 수십 억의 로봇들을 원격조종하도록 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죄다 한 바구니 안에서만 노는 겁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좋지 않아요."

"네 생각이 옳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백 년 정도 흐르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지. 난 살아서 그 꼴을 보지는 않을 테고. 사실 난 일 년을 못 버틸 것 같다."

"폴!"
앤드류는 걱정스럽게 외쳤다.

폴은 어깨를 으쓱했다.

"앤드류, 우리 인간들은 불사신이 아니야. 너와는 달라. 뭐 이런게 별 중요한 건 아니지만, 네게는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마틴 집안의 마지막 사람이다. 너를 빼면. 종조모님 슬하에서 내려온 먼 친척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내가 개인적으로 관리해 온 재산은 네 이름으로 된 신탁에 상속시키겠다. 앞으로 너는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곤란을 겪지 않을 거야."

"필요없는 일입니다."
앤드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과는 달리 마틴 집안의 사람이 죽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폴이 말했다.
"자, 논쟁은 그만두자.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어. 그런데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있지?"

"나는 안드로이드 -- 나 자신 -- 를 위해 탄수화물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원자력 에너지가 아니고요."

폴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러면 숨을 쉬고 음식물도 먹는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그런 연구를 했지?"

"꽤 오래 되었지요. 그러나 지금 설계하고 있는 것이 제일 적합할 것 같습니다. 탄수화물이 붕괴할 때 촉매작용을 해 주는 작은 산화캡슐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왜 그런 걸? 핵에너지가 훨씬 더 좋지 않나?"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핵에너지로 살아가지 않지요."

15.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앤드류에겐 시간이 많았다. 그는 폴이 평화롭게 숨을 거둘 때까지는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주인의 증손자가 마침내 사망하고 나자 앤드류는 험난한 바깥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꼴이 되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진작에 결심했던 일을 더욱 더 서둘렀다.
사실 완전히 혼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은 죽고 없어졌지만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런 법인은 로봇보다도 더 오래 살아 남을 것이다. 법률사무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경영방침을 별 무리없이 계속 고수하고 있었다. 앤드류 명의의 신탁 재산은 사무소에서 잘 관리해주는 덕에 점점 불어났다. 대신 법률사무소도 매년 막대한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겼다. 그들은 이제 앤드류가 고안한 새로운 산화캡슐 건을 법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마침내 앤드류가 [합중국 로봇 및 기계인간]회사를 방문하는 날이 왔다. 그는 혼자 갔다. 그 옛날 처음 갈 때는 주인과 함께, 그 다음엔 폴과 갔었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그의 모습은 겉보기에 사람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회사도 많이 변화하였다. 공장이 있던 곳은 거대한 우주정거장이 되었다. 비슷한 분야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그와 함께 많은 수의 로봇들도 사라져버렸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공원처럼 변해버렸고, 인구는 1조 명에서 균형을 이루었다. 그리고 독립된 양자두뇌를 가진 로봇들도 전체 인구의 3할 정도 되는 수가 있었다.
연구소 소장 앨빈 매제스쿠는 얼굴도 머리색깔도 거무튀튀했다. 뻣뻣한 턱수염에다 허리 위에는 아무런 옷도 입지 않았고, 단지 가슴띠만 둘렀다. 한창 유행하는 형식이었다. 앤드류 자신은 몇 십년은 되었을 구닥다리 모양의 옷을 입고 있었다.

매제스쿠가 말했다.
"물론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서 나도 반갑습니다. 어쨌거나 당신은 우리 회사에서 만든 로봇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니까. 지난날 스미스-로버트슨 사장님이 당신을 섭섭하게 해 드린 건 유감입니다. 좀 더 기분좋게 배려해 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도 그래주면 좋겠군요."

"아니, 이젠 안 될 겁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요. 우리는 지구에서 백 년 가까이 로봇을 다루기는 했지만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로봇은 우주에서 일하기에 더 적합합니다. 지금 지구에 있는 것들은 양자두뇌가 없는 게 태반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이 지구에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요. 그러나 당신같은 로봇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요구를 하려고 왔는지?"

"로봇으로서야 더 바랄 것이 없지요. 그러나 내 몸이 유기질 조직인 만큼, 에너지도 유기물에서 얻고 싶군요. 여기 제 생각을 정리해서 --"

매제스쿠는 서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있다가 점점 정색을 하며 진지하게 앤드류가 내민 자료에 몰두했다. 그가 마침내 얘기했다.
"이건 굉장한 것이군요. 이걸 누가 다 고안했습니까?"

"내가 했습니다."

매제스쿠는 한동안 앤드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당신 신체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실험에 불과한 단계니까. 지금까지 이런 것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냥 지금 그대로의 당신이 더 좋습니다."

앤드류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좀 애매했지만, 목소리엔 노골적으로 조바심이 깔려 있었다.

"매제스쿠 박사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군요. 당신은 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런 장치들을 제 몸에 정상적으로 설치할 수 있다면, 인간의 몸에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인공 장기들 따위를 이용해서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여기 제가 설계한 것들, 또 지금 설계하고 있는 것들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
이것들이 실용화되면 나는 그 특허권 관리를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에 일임할 겁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사업화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고, 만약 실제로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로봇 산업은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겁니다. 물론 당신 회사의 피해가 제일 크겠지요.
그러나 제 제의를 수락해서 내게 이 장치를 시술하고 앞으로도 비슷한 일을 해 준다면, 특허권 수수료에서 계속 배당금을 얻게 될 겁니다. 그리고 로봇은 물론 인간의 인공장기들에 대한 기술과 지식도 습득하게 될 겁니다. 미리 얘기하지만 이 일은 완벽해야 합니다. 첫번째 시술을 마치고 여러가지 시험을 거쳐 모든 것이 정말로 완벽하게 끝났다는 것이 입증된 뒤에만 방금 얘기한 여러가지 것들이 보장되는 겁니다."

앤드류는 자신의 단호한 태도가 로봇의 첫번째 법칙과 상충된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지금은 얘기를 듣고 있는 인간이 괴로울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인간을 위한 일이니까.

매제스쿠는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난 이런 문제를 혼자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소. 이사회에서 결정을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하오."

"적당한 만큼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만큼만입니다."

앤드류는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폴이 같이 왔더라도 이보다 더 멋지게 해내지는 못했으리라.

16.

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결정이 내려졌고, 그리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매제스쿠는 말했다.
"난 이번 수술에 반대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앤드류.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오. 시술 자체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어요. 단지 당신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로봇을 대상으로 하고 싶었소. 당신만이 가진 그 독특한 양자두뇌에 손상을 입히고 싶지 않았단 말이오. 이제 당신의 양자두뇌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신경조직들과 결합되었으니, 만약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기거나 하면 그 양자두뇌도 원래대로 회복시키기가 어렵게 될 거요."

"나는 합중국 로봇 회사의 기술진 여러분들 솜씨를 믿습니다."

앤드류는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음식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에에, 하여튼 올리브 기름도 주기적으로 마셔야 할 거요. 산화캡슐을 계속 청소해 줘야 하니까. 지난 번에도 설명했지요? 뭐 그다지 맛이 좋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시오."

"이 상태로 만족한다면 그렇게 해야 겠지요.그러나 내부에서 스스로 세척이 되도록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지금 저는 고체 음식물도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음식물 중에는 소화가 안 되는 부분도 있지요. 그런 것들은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배설물을 말하는 건가요?"

"그것에 해당되는 물질이 되겠지요."

"뭐 또 다른 것은?"

"뭐든지 다 할겁니다."

"생식기까지도?"

"지금으로서는 그것도 장기적인 계획에 들어 있습니다. 내 몸은 하나의 화폭이나 다름없고 나는 거기에다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내가 그리는 것은 --"

매제스쿠는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스스로 끝을 맺었다.
"인간입니까?"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요."

"좀 빗나간 야망을 가졌군요, 앤드류. 당신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요. 당신이 완전히 유기체로 탈바꿈해버린다면, 바로 그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오."

"내 두뇌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니, 아니오. 결국은 알게 될 겁니다. 아무튼 앤드류, 당신이 고안한 인공 장기들은 아주 획기적인 것이오. 그 제품들의 특허권은 당신 이름으로 시장에 선을 보이게 되겠군요. 발명가로서 공로를 인정받게 될 거고, 바로 당신 자신의 몸으로 그 효능을 훌륭하게 입증하는 셈이지. 그렇다면 당신 스스로 또 다른 시도를 안 해 볼 수가 없겠군."

앤드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예가 찾아왔다. 앤드류는 몇몇 이름있는 학회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 그 중에는 그가 온 정열을 다 바쳐 새롭게 개척한 분야의 학문도 있었다. 그가 언젠가 '로봇생리학'이라고 이름붙였던 그 학문은 이제 '인공생리학'으로 자리잡았다.
앤드류가 탄생한 지 백오십주년이 되는 날, 합중국 로봇 회사에서 성대한 축하 만찬이 베풀어졌다. 앤드류는 그 자리에서 묘한 감회를 느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은퇴해서 노년을 한가롭게 보내고 있던 앨빈 매제스쿠도 참석했다. 그는 아흔네살이었지만 간과 콩팥을 인공장기로 대체시켜서 아직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매제스쿠가 짤막하지만 감동적인 연설을 하고 난 뒤에 축배를 높이 드는 순간 만찬은 절정에 달했다. 그는 외쳤다.
"백오십살된 로봇을 위하여!"

앤드류는 얼굴 근육을 새로 손봐서 웬만한 표정은 사람과 거의 똑같이 표현할 수 있었지만, 그는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무표정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백오십살 먹은 로봇'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