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살을 맞은 사나이 2

Day 1,359, 03:11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Carl Jung

9.

앤드류가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주인이 죽은 직후부터였다. 처음에는 조지가 준 낡은 바지를 입었다. 조지는 결혼을 해서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페인골드의 사무실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옛날의 페인골드 변호사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그의 딸이 가업을 물려받아 마침내 사무실 이름은 [페인골드 앤드 마틴]이 되었다. 그 딸도 나중에 퇴직하고 마침내 페인골드 집안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앤드류가 처음 옷을 입었던 때는 법류사무소 이름에 '마틴'이 막 추가되었던 시기였다.
조지는 웃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앤드류가 처음으로 옷을 입은 채 조지를 바라보았더니 얼굴에 가득한 웃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조지는 바지의 정전기를 솜씨좋게 다루면서 양 다리를 집어넣고, 바지를 끌어올리고, 허리띠를 차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앤드류도 자기 바지를 가지고 따라했지만, 조지의 동작 하나하나를 그대로 흉내내려면 한참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지가 말했다.
"근데 왜 바지를 입으려는 거지, 앤드류? 네 몸은 아주 아름다워서 그걸 가리면 오히려 누추해 보일텐데. 체온을 조절할 필요도 없고 뭐 그렇다고 부끄러워서 가리려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야. 게다가 옷은 금속제 몸뚱이에선 자꾸 흘러 내릴텐데."

"인간의 몸은 아름답지 않나요, 조지? 그래도 당신은 옷을 입지요."

"몸을 따뜻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하려고 입지. 보호하기 위해, 또 장식하는 의미도 있지만 너는 그런 게 필요없잖아."

"옷이 없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듭니다. 느낌이 달라요, 조지."

"느낌이 다르다고! 앤드류, 지구 상에는 수백만의 로봇이 있어. 이 지역에만 해도 지난번 통계를 보면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로봇이 있다고."

"압니다, 조지. 모든 종류의 작업에 적합한 로봇들이 일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중에 옷 입은 로봇은 하나도 없어."

"그러나 그 중에 자유로운 로봇도 하나 없지요, 조지."

한 벌 두 벌 앤드류는 옷을 모았지만, 그는 조지의 웃음과 주문을 하러 오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썼다. 그는 자유롭긴 했으나 그의 두뇌에는 사람들에 대한 행동을 주의하도록 섬세하게 조정된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묘한 판단에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앤드류를 자유로운 로봇으로 봐 주지는 않았다. 그는 화를 낸다는 것을 몰랐고 아직도 적대적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논리 회로가 곤란을 겪었다.
앤드류는 될 수 있으면 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 다만 작은 아씨가 방문할 때는 예외였다. 그녀는 이제 늙었고 무더운 계절에는 별장으로 가 있을 때가 많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처음 하는 일은 앤드류를 찾아 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들이 휴가에서 돌아온 뒤, 조지가 와서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앤드류, 난 내년에 의회 의원에 입후보하게 됐다. 외할아버지처럼.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외손자는 외할아버지를 따라야 한다시는구나."

"외할아버지처럼 --"

앤드류는 말을 멈추었다. 뭔가 뭔지 모르겠다.

"외손자는 바로 나, 조지를 말하는 거야.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너의 주인님이고. 그 분도 한때 의원이셨지."

"기쁜 일입니다, 조지. 주인님께서 아직도 --"

그는 말을 중단했다. '작동하고 계신다면'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부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아계신다면."

조지가 말했다.
"그래, 난 이따금 옛날의 괴물 할아버지를 생각하곤 하지."

그날 대화는 앤드류가 되새겨 봐야만 했다. 조지와 얘기할 때는 자신의 어휘력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튼 처음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던 어휘들보다는 많이 늘었다. 그런데 조지는 주인이나 작은 아씨보다도 더 많은 구어체 표현을 사용한다. 적당하지 않은 말임이 분명한데 왜 조지는 주인을 '괴물'이라고 불렀을까?
앤드류는 책을 뒤적여 봤지만 소용없었다. 책들은 대부분 낡았고 주로 목재 가공이나 예술, 가구설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언어에 관한 것이나 인간들에 관한 것은 별로 없었다.
필요한 다른 책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자유로운 로봇인 만큼, 조지에게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내로 나가서 도서관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두뇌회로에서 전위차가 증가하는 것을 느끼고 조정 코일을 끼워넣었다.
앤드류는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었다. 자신이 만든 나무 목걸이까지 목에 걸었다. 반짝거리는 플라스틱 목걸이가 더 좋았지만 조지 말에 따르면 나무목걸이가 더 어울리고 가치도 있다.
그는 집에서 나와 50미터 쯤 걸어가다가 두뇌회로의 저항이 증가한 것을 느끼고 멈추어 섰다. 머리에서 조정 코일을 다시 빼 내었다. 이제 전위차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백지 한 장에다 '도서관에 갔습니다'라고 쓴 뒤 작업대 위에 펼쳐 놓았다.

10.

앤드류가 처음부터 곧장 도서관을 정확하게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길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길거리 풍경은 알지 못했다. 지도에 표기된 것과 거리의 이정표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는 망설였다. 마침내 낯설기만한 풍경들 속에서 잘못된 길로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때때로 야외에서 일하는 로봇들을 지나쳐 갔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길을 물어 봐야겠다고 결정하고나자, 주변에 로봇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차 한대가 그의 옆을 지나쳐 갔다. 그는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었다. 앤드류로서는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는 얘기다. 그 때 사람 두 명이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 왔다.
앤드류가 얼굴을 돌려 그들을 쳐다보자 그들은 앤드류 쪽으로 방향을 바꿔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그들은 떠들썩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앤드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조용했다. 인간들이 흔히 나타내는 의혹의 표정을 하고 다가오는 그들은 젊었다. 그러나 아주 젊지는 않다. 한 스무 살 쯤 되었을까? 앤드류는 인간들의 나이를 잘 판단할 수가 없었다.

앤드류는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시립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둘 중 키가 큰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자도 꼭지가 높아서 전체적으로 그 사람을 기괴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러나 앤드류한테 한 것은 아니었다.

"로봇이야."
뭉툭한 코에 두꺼운 눈꺼풀을 단 다른 사람이 말했다. 역시 앤드류에게 한 것은 아니었다.

"옷을 입고 있잖아."

꺽다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자유 로봇이야. 마틴 일가에서 가지고 있다가 자유롭게 해 주었다는 그거야. 근데 왜 옷을 입고 있지?"

"물어 봐."
뭉툭코가 말했다.

"니가 마틴의 로봇이냐?"
꺽다리가 말했다.

"저는 앤드류 마틴입니다."

"좋아, 옷을 벗어. 로봇은 옷을 입지 않아."

그는 자기 친구에게 얘기했다.
"메스꺼워서 못 참겠군. 이 놈을 좀 봐."

앤드류는 망설였다. 그는 그렇게 강경한 어조의 명령을 들어본 지가 워낙 오래되어서 두 번째 법칙이 담긴 회로가 잠시 혼란을 일으켰다.

꺽다리가 말했다.
"옷을 벗어. 너한테 명령하는 거야."

천천히 앤드류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꺽다리가 말했다.
"바닥에 버려."

뭉툭코가 말했다.
"지금 이 놈의 임자가 없다면 우리가 가져도 상관없잖아."

"그야 뭐, 누가 뭐라 그러겠어? 이 놈을 부수겠다는 것도 아닌데...물구나무 서."

마지막 말은 앤드류에게 한 것이었다.

"물구나무는 --"

"이건 명령이야. 만약 할 줄 모르면, 하려고 노력이라도 해 봐."

앤드류는 다시 망설이다가 머리를 땅에 대었다. 그리고는 다리를 하늘로 치켜들었다가 이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꺽다리가 말했다.
"그냥 누워 있어."

그는 뭉툭코에게 말했다.
"이걸 분해해 보자. 로봇 분해해 본 적 있어?"

"이게 가만 있을까?"

"가만 있지 않으면?"

만약 그들이 앤드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한다면, 앤드류는 그들의 행동을 막을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세 번째 법칙은 복종의 의무를 규정한 두 번째 법칙보다 우선권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분해하려는 그들을 다치지 않고서 말릴 수는 없었고,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말리려 할 경우 그것은 첫 번째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두뇌 회로가 앤드류의 몸에서 힘을 뺐고, 그는 와들와들 떨면서 그 자리에 그냥 누워 있어야만 했다.

꺽다리가 다가와서 발로 그의 몸을 밟아 눌렀다.

"무거운데, 그나저나 연장이 있어야지."

뭉툭코가 말했다.
"이 놈더러 직접 자기 몸을 분해하라고 하면 되쟎아. 그걸 보고 있는게 더 재미있을 걸."

"그렇군."

꺽다리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전에 도로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옮기자구. 누가 지나가다가 보면 --"

이미 늦었다. 정말로 누가 오고 있었다. 조지였다. 앤드류가 누운 채로 돌아보니 조지가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앤드류는 그에게 신호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마지막 명령은 '그냥 누워 있어!' 였다.
조지는 숨이 가쁘도록 뛰어왔다. 두 젊은이는 약간 뒤로 물러난 채 긴장된 표정으로 조지를 바라보았다.

조지가 다급하게 물었다.
"앤드류, 뭐 잘못된 것 없니?"

"나는 괜찮습니다, 조지."

"그럼, 일어 나. 옷은 어쨌어?"

꺽다리가 말했다.
"맥, 이 로봇 당신 거요?"

조지는 휙 돌아보며 말했다.
"앤드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지?"

"옷을 좀 벗어보라고 얌전히 부탁했죠. 당신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상관이요?"

"앤드류, 이 자들이 무슨 짓을 했지?"

"제 몸을 분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듯 합니다. 조용한 장소로 옮겨서 제 스스로 제 몸을 분해하라고 명령하려 했습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조지의 얼굴 피부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위축된 자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꺽다리가 천천히 말했다.

"왜 그러는 거요, 땅딸보 양반? 우리한테 덤비겠다는 거요?"

"천만에. 그럴 필요는 없지. 이 로봇은 70년이 넘도록 우리 집안에서 함께 지내왔다. 우리 식구들을 그 누구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너희 두 녀석이 내 생명을 위협한다고, 날 죽이려고 덤빌거라고 말하겠다. 그에게 나를 보호하라고 명령하겠어. 그가 나와 너희 두 녀석 중에서 누구를 택할까? 물론 나지. 그가 너희들을 공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겠나?"

두 사람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불안한 기색이었다.

조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앤드류, 난 지금 위험에 빠져 있다. 이자들이 날 해치려 하고 있어. 이 놈들에게로 가라!"

앤드류는 명령대로 했고, 두 젊은이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쏜살처럼 달아나 버렸다.

"됐다, 앤드류. 이제 안심해도 돼."

그렇게 말하는 조지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그는 혼자서 두 사람의 젊은이를 상대로 난투극을 벌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조지. 그들은 당신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난 그 녀석들을 공격하라고 하진 않았어. 단지 그 놈들한테로 걸어가라고 했지. 그 다음엔 제풀에 겁을 집어먹은 그놈들이 알아서 한 거야."

"어떻게 로봇에게 겁을 먹을 수 있습니까 ? "

"그건 아직까지 아무도 고치지 못한 인간들 모두의 병이지. 아무튼 이젠 더 이상 신경쓰지 마. 대관절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앤드류? 헬리콥터를 빌려 타고 너를 찾아다녔어. 도서관에 가겠다는 생각은 왜 했지? 난 네가 원하는 책은 뭐든지 가져다 줄 텐데 말이야."

"나는 --"

"그래그래, 너는 자유 로봇이야. 좋다구.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보고 싶은 거지?"

"인간에 대해, 세계에 대해, 그 모든 것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로봇에 대해서도요, 조지. 나는 로봇의 역사를 쓰고 싶습니다."

"좋아,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옷을 다시 입자구. 앤드류, 로봇에 대한 책은 엄청나게 많아. 그리고 그 모두 다 로봇 공학의 역사를 담고 있지. 세상은 로봇 뿐만 아니라 로봇과 관련된 정보들도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앤드류는 머리를 흔들었다. 최근에 구사하기 시작한 몸짓이었다.

"로봇 공학의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조지. 로봇의 역사입니다. 로봇이 쓴 로봇의 역사입니다. 나는 지구상에서 최초의 로봇이 일하기 시작한 이래, 세상 일들에 대해서 로봇이 어떻게 느끼는 가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조지의 눈썹이 올라갔지만,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11.

작은 아씨는 막 여든 세 번째 생일을 보낸 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정열과 결단력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애용하는 지팡이는 몸을 지탱하기보다 얘기하면서 휘두를 때가 더 많았다.
그녀는 대단히 노한 얼굴로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조지야, 끔찍한 얘기구나. 그 애송이 깡패들이 누구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상관없지 않아요? 결국 아무런 나쁜 짓도 못 했으니까."

"그냥 놔 뒀으면 했겠지. 조지야, 넌 변호사이지. 네가 잘 되는 것은 전부 다 앤드류의 덕인 줄 알아라. 그가 벌어준 돈이 우리 집안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변함없이 우리 집안에 충실했어. 나는 그를 갖고 놀다가 고장나버린 장난감처럼 취급하지는 않을 게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어머니 ?"

"넌 변호사라고 말했지. 듣고 있니? 이번 기회에 판례를 남겨야 된다. 지방 법원에다 로봇의 권리를 명시하는 법조항을 만들고 그걸 의회에서 통과시켜야만 해. 그리고 필요하다면 [세계 대법원]까지 가지고 가야 된다. 알겠니? 계속 지켜 볼 거다, 조지야. 얼렁뚱땅 처리하는 건 내가 용서 못한다."

그녀는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늙은 부인은 법적으로 확실한 조치가 취해져야만 마음을 놓을 것 같았다.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의 소장인 조지는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전략을 짜기 시작했지만 그 실제적인 집행은 사무소에 소속된 변호사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 일들 중에서 많은 부분은 조지의 아들인 폴의 몫이었다. 폴은 사무소의 업무에 대해 거의 매일같이 할머니에게 충실하게 보고를 올렸고, 그러면 이번에는 할머니가 앤드류와 하루도 빠짐없이 토론을 했다.
앤드류는 매우 열심이었다. 로봇의 역사를 집필하는 그의 작업도 연기되었다. 그는 법적인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데 열심이었을 뿐 아니라, 때때로 획기적인 제안을 내 놓기도 했다.

앤드류는 말했다.
"조지가 그날 제게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로봇에게 겁을 집어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이나 의회에서 로봇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할 리가 없습니다. 일반인들의 여론을 고려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폴이 법정에 있는 동안에, 조지는 대중들을 상대로 연설하기로 했다. 변호사인 조지로서는 비공식적인 자리에 나간다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없어 좋았다. 그는 농담삼아 '주름치마'라고 부르곤 하는 느슨하고 편한 복장을 즐겨 착용하고 다녔다.

폴이 말했다.
"아버지, 그 옷은 입지 않으시는 게 좋겠어요. 그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시면 별로 보기 안 좋아요."

조지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래, 알겠다."

어느 날 조지는 홀로그램 뉴스 편집자들의 연례 모임에 나가서 연설을 했다. 그가 한 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었다.

"제 2 법칙에 따르면, 인간을 해롭게 하는 행위만 제외하고 우리는 어떤 명령이라도 로봇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인간이라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누구라도, 로봇에게 절대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어떤 로봇에게라도 말입니다. 제 2 법칙은 제 3 법칙에 항상 우선하기 때문에 로봇은 인간의 명령이라면 그 누구의 것이든 반드시 따라야만 하고, 따라서 그럴 경우에는 로봇이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제 3 의 법칙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여하한 이유에서든 인간은 로봇에게 자해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수 있고, 심지어는 자살 -- 물론 로봇의 자살이지요 -- 하라는 명령도 내릴 수 있습니다. 더 어처구니 없는것은 여하한 이유가 없더라도, 즉 그냥 심심해서 그런 명령을 내리더라도 로봇은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지요.
이게 과연 정당한 것입니까? 우리는 동물을 다룰 때도 이렇게까지는 안 합니다. 아무리 생명이 없는 존재지만, 우리에게 봉사하는 그 엄청난 일들을 생각해보면 로봇도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은 있습니다. 그리고 로봇이라고 해서 아무런 감각이나 감수성이 없는 쇠덩어리가 아닙니다. 동물과는 또 달라요. 로봇은 우리들과 같이 얘기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농담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와 많은 일을 함께하는 그들을, 친구처럼 대할 수는 없는 것인가요? 아주 작은 조각이나마 우정의 일부분을 떼어주고, 일의 보람도 같이 나눌 수는 없는 건가요?
우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라고 하지 않는 이상 로봇에게 어떤 명령이라도 내릴 권리가 있다면, 마땅히 로봇에게 해가 되는 명령은 내리지 않아야 할 도리 또한 지켜야 합니다. 물론 인간의 안전이 우선할 경우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행사할 수 있는 힘이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르는 책임도 큰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 로봇이 지켜야 할 철칙이 세 가지라면, 인간에게도 로봇을 위해 한두 가지는 지켜달라고 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요구일까요?"

앤드류가 옳았다. 일반 여론에 호소하는 방법은 결국 법원과 의회에서 내리는 결정에도 영향을 끼쳤고, 마침내 이유없이 로봇에게 해가 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금지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법적 효력을 갖거나 심지어 그 행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이제 원칙은 세워진 것이다. [세계 의회]에서 결의안을 최종적으로 선포한 날, 작은 아씨는 숨을 거두었다.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었다. 작은 아씨는 가냘프게 한 숨 한 숨 지탱해가며 의결 과정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마지막 소식을 듣고서야 안심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그는 임종 순간에 앤드류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넌 우리에게 정말 잘해 주었어, 앤드류."

아들 내외와 손자녀들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작은 아씨는 앤드류의 손을 꼬옥 쥔 채 숨을 거두었다.

12.

접수 계원이 사무실 안으로 사라지고 난 뒤 앤드류는 참을성있게 계속 기다렸다. 처음에 손님을 상대했던 것은 분명 입체영상이었고 실제로는 아무도 -- 사람은 물론, 로봇도 -- 없는 '무인접대기'인 것이다. 흔히들 로봇 손님을 상대하는 방법이다.
앤드류는 그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보며 시간을 보냈다. '무인'이라는 말은 물론 글자 그대로 '사람이 없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이제는 '사람도 로봇도 없는'이라는 의미로 확대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같은 세상이라면 그 말이 가지는 사전적 의미도 인간과 로봇을 같이 은유한다고 할만큼 충분히 변하지 않았을까?
로봇의 역사를 저술하는 작업을 하면서 앤드류는 그와 같은 문제에 빈번하게 부딪치곤 했다. 그런 미묘하고 복잡한 일들을 글로 표현하느라 고심하는 사이에 앤드류의 어휘력은 월등하게 나아졌다.
이따금 누군가가 사무실 안쪽에서 나와 앤드류를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그는 그런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앤드류도 담담한 눈길로 마주 쳐다보았고 그러면 상대방은 다시 들어가버리곤 했다.
마침내 폴 마틴이 나왔다. 그는 놀란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앤드류가 그의 표정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면.
폴은 얼굴에 짙은 화장을 했고, 입은 옷은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애매모호할 정도로 야릇한 것이었다. 둥글둥글한 얼굴 선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한 폴은 날카롭고 강단지게 보였다. 앤드류는 불만스러웠다. 그는 입 밖으로 말을 내어 표현하지는 않아도 사람의 모습이 불만스럽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또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아무런 거북함을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왜 불만스러운지를 조목조목 따져서 글로 쓸 수도 있었다. 앤드류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고, 이전에는 불만을 느낀다는 일이 불가능했음도 잘 알고 있었다.

폴이 입을 열었다.
"들어 와, 앤드류. 미안하군, 기다리게 해서. 뭘 좀 끝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야. 자, 들어 오라구. 네가 날 보고싶어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사무실로 오겠다는 줄은 몰랐지."

"폴, 당신이 바쁘시다면 나는 계속 기다릴 수 있습니다."

폴은 벽의 시계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잘 보이지 않았다.

"아냐, 약간은 시간을 낼 수 있어. 혼자 왔나?"

"무인자동차를 타고 왔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폴은 약간 불안한 기색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나의 권리는 보호받고 있지요."

폴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설명해 주었을텐데. 로봇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것은 강제적인 법률이 아니야.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네가 계속 옷을 입고 다닌다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기고 말 거야.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 때 뿐이었지요, 폴. 당신 기분을 나쁘게 해서 죄송합니다."

"자 자, 이렇게 생각해 봐. 너는 사실상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야, 앤드류. 너 스스로 모험과 같은 행동을 하고 다니기에는 너무나도 귀중한 존재라구...그나저나 쓰고 있는 책은 어떤가?"

"거의 다 마쳤습니다, 폴. 출판사에서 아주 좋아하더군요."

"거 참 잘됐군!"

"그들이 정말로 책 내용이 좋아서 기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로봇이 썼다니까 사람들이 호기심에서 많이 사보리라고 기대하는 것 같더군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그런 이유 같습니다."

"좋아하는 건 사람들 뿐 아닐까? 로봇들은..."

"저는 상관없습니다. 아무튼 책이 많이 팔리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을테니까 그걸로 충분합니다."

"할머니가 너에게 남긴 --"

"작은 아씨는 참 너그러우신 분이었지요. 당신의 집안은 앞으로도 저를 변함없이 돌봐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제 책의 인세 수입으로 충당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려는 일이 뭔데?"

"저는 [합중국 로봇 및 기계인간]회사의 사장과 만나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그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회사는 제가 책을 쓸 때도 협조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폴은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협조라고? 기대할 게 따로 있지. 그 사람들은 우리가 로봇의 권리를 위해 결의안을 이끌어내느라 뛰어다닐때도 전혀 도와주지 않았던 작자들이야. 왜 그랬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로봇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면 누가 로봇을 사려고 하겠어?"

"그렇긴 합니다만, 만약 당신이 부탁한다면 저와 사장과의 면담을 주선해 주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너보다 뭐 그렇게 더 유명한 사람도 아니야, 앤드류"

"당신이 가서 [페인골드 앤드 마틴]법률사무소가 로봇의 권리 신장을 위해 일하던 종전의 방침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도록 얘기를 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란 말인가, 앤드류 ?"

"그렇습니다, 폴.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당신이 가서 얘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 그래, 너는 거짓말을 할 수 없지. 그렇지만 이건 나보고 거짓말을 하라고 부추기는 거잖아, 안 그래? 가면 갈수록 사람을 닮아가는군, 앤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