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살을 맞은 사나이-終

Day 1,359, 05:37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Carl Jung

17.

앤드류가 지구를 떠난 것은 탁월한 인공생리학 지식 때문이었다.
앤드류가 탄생 백오십주년을 보낸 뒤 십 수 년이 흐르는 동안, 달은 지구 자체보다도 더 지구에 가까운 생활환경을 이루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중력만큼은 달의 지하에 있는 수많은 도시들에서 쾌적하게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달에 사는 사람들이 착용할 인공장기는 달의 중력에 맞게 모든것을 처음부터 새로 설계해야 했다. 앤드류는 달에 오 년 동안 머물면서 인공생리학자들과 함께 연구에 몰두하여 달의 중력에 맞는 인공장기들을 개발해냈다. 이따금 작업을 쉴 때면 로봇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산책하곤 했다. 마주치는 로봇들은 모두 사람에게 하듯 아첨하는 태도를 보였다.
앤드류는 다시 지구라는 단조롭고 조용한 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를 방문했다.
사무소 소장 사이먼 드롱은 놀란 얼굴로 앤드류를 맞았다.

"아직 돌아오는 중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앤드류.(그는 거의 마틴 씨라고 말할 뻔했다.) 다음 주 쯤에나 돌아올 것으로."

"참을 수가 없더군요."
앤드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는 본론을 꺼내려고 조바심치며 말했다.

"사이먼, 달에선 말이오, 나는 스무 명의 학자들로 이뤄진 연구팀을 책임지고 이끌었소. 나는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들 중 반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달에 있는 로봇들은 자기도 나중에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두 나를 따랐소. 그렇다면 말이오, 말해 보시오 사이먼, 나는 사람이 아닙니까?"

드롱은 앤드류에게 조심스런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친애하는 앤드류, 당신이 방금 말했다시피 당신은 사람에게서나 로봇에게서나 하나의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어요. 따라서 당신은 사실상 인간이나 마찬가집니다."

"'사실상 인간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나는 그렇게 대접받는 것은 물론이고 법적으로도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소. 나는 인간이라는 것을 법으로 인정받고 싶소."

"그건 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떤 편견 내지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요? 당신은 어느 모로 보나 인간과 매우 흡사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아닙니다."

"왜 아니라는 겁니까? 나는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신체 내부의 기관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 몸 속의 기관들 중에는 인간의 몸에 들어간 인공장기와 아주 똑같은 것도 있습니다. 나는 인간의 예술과 문학과 과학에 지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지금 생존하는 사람중에서 나만큼 커다란 공헌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뭐가 부족하다는 겁니까?"

"나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세계 의회]에서 당신을 인간으로 규정하는냐 하는 거지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러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내가 [세계 의회]의 누구한테 얘기를 하면 좋겠습니까?"

"과학기술 위원회의 의장에게 얘기하면 될 겁니다, 아마도."

"당신이 좀 주선해 주시겠습니까?"

"글쎄, 당신 정도라면 굳이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만날 수 있을 텐데. 당신의 지위와 명예라면 --"

"아니오. 당신이 주선하시오."
(앤드류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는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사실 그는 달에서 이런 일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류사무소가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을 위원회 의장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후, 그러면 --"

"전폭적으로, 끝까지 지원하는 겁니다, 사이먼. 지난 백 칠십오 년 동안 내가 이 사무소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가는 새삼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그동안 나는 이 사무소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성실하게 봉사해 왔습니다. 이제는 그 빚을 돌려받자는 겁니다."

드롱은 대답했다.
"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지요."

18.

과학기술 위원회의 의장은 동아시아 출신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치 리싱이었는데, 입고 있는 옷이 죄다 투명해서 마치 플라스틱으로 포장한 것 같이 보였다.

리싱이 말했다.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당신의 희망에 저도 동감을 합니다. 우리 인간들의 역사에도 인간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일이 많았지요.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권리는 도대체 무엇이지요?"

"간단합니다. 그저 마음놓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원합니다. 로봇은 언제 어느 때든 분해되어 버릴 염려가 있지요."

"인간도 언제 어느 때 사형선고를 받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형선고는 법에 의해서만 내려지고 집행되는 것이지요. 나를 분해하는 데에는 재판이 필요없지 않습니까? 그저 인간이 내게 명령만 내리면 그걸로 끝입니다. 게다가 -- 게다가 --"

앤드류는 자신이 얘기하고 있는 것들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를 썼지만, 교묘하게 가장했던 인간의 표정이며 목소리로
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인간들의 여섯 세대를 거쳐오는 동안 오로지 그것만을 원했습니다."

리싱은 동정어린 눈빛으로 앤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회에서 당신은 인간이라고 선언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어요. 설사 돌로 만든 석상이라도 의회에서 인간이라고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면 하면 그 순간부터 인간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의회에서 실제로 그렇게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요. 그런 애매모호한 경우에는 대개들 선례나 일반적인 여론에 따르게 되는데, 의원들이란 결국 전체 인구의 여론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니까 순조롭게 풀릴 문제는 아니군요. 사람들은 로봇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지금도 그렇습니까?"

"지금도 그래요. 당신이 인간으로서 자격을 충분히 획득했다는 사실은 모두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뭔가 좋지않은 선례를 남길까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무슨 선례를 말하는 겁니까? 난 단 하나뿐인 자유 로봇입니다. 나와 같은 로봇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구요. 합중국 로봇 회사에다 자문을 구해보셔도 좋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요. 앤드류, 아아, 당신이 좋다면 마틴 씨라고 부르지요. 나 개인적으로는 당신을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데 조금도 이의가 없어요. 그러나 당신도 알게 되겠지만 다른 의원들은 대개 일반인들의 편견이나 선입감에 많이 좌우됩니다. 그게 부질없는 내용이라는걸 알면서도 그렇게들 한다구요. 마틴 씨, 나는 당신의 처지를 동정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희망은 갖지 않는게 좋을 겁니다. 사실 --."

그녀는 뒤로 물러 앉았다.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사실 이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이 되면, 의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분명히 당신을 분해해 버리자는 얘기가 나오게 될 거예요. 이 복잡하고 골치아픈 딜레마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까. 정말 이 일을 계속 끌고 나갈 작정이라면 반드시 그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만 합니다."

"내가 인공생리학에 기여한 그 모든 공로나 업적을 모두들 기억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나 혼자서 일구어내다시피 했던 그 기술들을요? "

"참 무서운 일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게 사람이예요. 그리고 설사 기억한다해도 결과적으로는 당신에게 더 좋지않은 인상을 갖게 해 줄겁니다. 그들은 말할 거예요. 당신이 그 방면에서 이룩한 업적들은 모두 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 한 거라고 말입니다. 죄다 인간을 로봇과 비슷하게 만드려는 의도가 아니면 로봇을 인간과 비슷하게 만드려는 꿍꿍이다, 뭐 이렇게들 말할게 뻔해요. 물론 두 가지 경우 다 인간들이 보기엔 아주 좋지 않은 일이죠. 마틴 씨, 당신은 정치적인 구설수에 휘말려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우리들은 흑색 선전의 표적이 될 테고 우리 스스로 그 내용을 인정하든말든 그 거짓 선전을 믿는 사람들은 생깁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세요."

리싱은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몸집이 작아서 앤드류에 비하면 어린이처럼 보였다.

앤드류가 말했다.
"만약 내가 인간성을 얻기 위해 투쟁하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은 내 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

리싱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그렇게 할 거예요. 그렇지만 만약 어느 때든지 나의 입장이 내 정치적 입지를 위태롭게 한다고 판단된다면, 당신을 저버릴 수도 있죠. 왜냐하면 이 문제는 나의 기본적인 정치적 신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니까요. 당신에게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고맙습니다. 더 이상 당신께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끝까지 밀고 나갈 작정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기꺼이 응하시는 한도 내에서 당신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19.

정면 승부를 걸지는 않았다.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는 신중하게 전략을 짰고 앤드류는 이제 그런 준비 작업이 신물이 난다고 투덜거렸다. 사무소는 골치아픈 문제의 발생 소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여론 공작에 착수했다.
그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인공심장을 다는 사람들은 수술 즉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삭제해 버리자고 건의안을 상정한 것이다. 더해서 인공장기를 단 사람들일지라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무소는 노련하고 끈덕지게 소송을 이끌어나갔고,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패소했지만 그들의 일관된 태도는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침내 [세계 대법원]에서도 그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몇 년의 시간과 몇 백만 달러의 돈이 투자되었다.
마침내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결국 그들은 패배하고 말았지만 드롱은 법적 패배보다 더 의미있는 승리를 거두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동안의 노력이 앤드류를 위한 것이었음은 당연한 얘기다.

"우린 두 가지를 해 냈습니다, 앤드류."
드롱이 말했다.

"물론 둘 다 좋은 것이지요. 우선 첫째로, 인공장기나 아니면 그 밖에 어떤 것이든 인공부분이 있는 신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보통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성'이란 개념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인공 장기들에 의존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 의회]가 나를 인간으로 인정해 줄까요?"

드롱은 그다지 편치않은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낙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세계 대법원]이 인간을 정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하나 있지요. 인간은 유기질 세포로 이루어진 두뇌를 갖고 있지만 로봇은 백금-이리듐 회로로 만들어진 양자두뇌를 갖고 있지요. 그리고 당신의 두뇌도 양자두뇌인 것입니다.... 아아, 앤드류.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우리는 아직 유기질 세포로 이뤄진 두뇌를 만들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대법원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건 당신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부딪쳐 봐야죠. 리싱 위원장이 우리편이 돼 줄 테고 또 다른 의원들 중에도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을 테니까. [세계 의회]의 의장은 최종 판단을 내리기 전에 대다수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 틀림없어요."

"대다수가 우리 편일까요?"

"아니오, 아직은 멀었다고 봐야죠. 그렇지만 그동안 우리가 해 온 작업덕분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성의 개념이 꽤 넓어졌으니까, 그런 여론에 기대하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당신이 포기하지 않겠다면 한번 운에 맡기고 도박을 해 보는 겁니다."

"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20.

리싱 위원장은 앤드류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신 더 늙어 보였다. 지금은 투명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머리는 짧게 잘랐고 입은 옷은 품이 넉넉했다. 앤드류 자신은 거의 백 년 전 처음 옷을 입기 시작했을 때의 모양과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지금 사람들이 봐도 최소한 흉을 보지는 않을 그런 정도의 고루한 옷들을 걸치고 있었다.

리싱이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어요, 앤드류. 쉽게 좌절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우리는 패배하고 말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할 거예요. 나도 할 수 있는데까지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음 번 선거에서 표만 잃어버릴 결과가 되었어요."

"나도 압니다. 그 때문에 나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만약 일이 그렇게 되면 나를 포기한다고 하고선 왜 계속 내 입장을 지지하신 거죠?"

"아시다시피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변하는 법이지요. 당신을 포기한다는 것이 내게는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예요. 어쨌거나 내가 [세계 의회]에서 일해 온 지도 이십오년이나 되었으니 더 이상 여한도 없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방법이 달리 없을까요, 리싱?"

"우리는 몇몇 순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지요. 그러나 나머지 대다수는 로봇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나 공포를 없애버리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 반감이나 공포가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데 타당한 이유가 됩니까?"

"타당한 이유는 아니지요, 앤드류. 그렇지만 별다른 기준이 없다면 결국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앤드류는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두뇌로 귀결되는군요. 그러나 이 문제가 과연 유기질 뇌세포냐 양자회로 뇌냐의 차원에서만 다루어져야 합니까?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느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없습니까? 그저 단순히 두뇌가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 하는 문제에만 집착해야 되는 겁니까? 두뇌란 어느 일정 수준 이상의 사고작용이 가능한 모든 것의 총칭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 않아요?"

"그런 논리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두뇌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의 두뇌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의 두뇌는 조립된 것이지만, 인간의 두뇌는 진화한 것입니다. 인간과 로봇 사이의 구별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실들이 도저히 깰 수 없는 거대한 벽과 마찬가지예요."

"만약 그런 뿌리깊은 반감과 공포의 근원을 알 수만 있다면, 정확한 근본 원인을 알 수만 있다면 --"

"당신은 그 기나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리싱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인간들을 이성으로 설득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군요. 불쌍한 앤드류, 화내지 마세요. 계속 인간이 되라고 끈질기게 이끌어 가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로봇이기 때문이예요."

"난 모르겠군요."

앤드류는 변함없는 태도로 말했다.
" 만약 내가 내 스스로 --"

만약 그가 그 스스로 --
그는 오래전부터 결국은 그것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의사를 찾아나선 것이다. 그는 그 일에 적합한 솜씨를 갖춘 의사를 주변에서 은밀하게 찾아냈다. 일에 적합하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로봇 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술 솜씨도 솜씨거니
와, 무엇보다도 인간의사는 심중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로봇의사는 사람에게는 그런 수술을 할 수가 없기때문에, 앤드류는 마침내 사실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로봇이라고 밝히기 전에 로봇의사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들은, 그 자신으로 하여금 지난 날들의 갖가지 소동과 혼란들을 다시 떠오르게 하였다. 제 1법칙에 따라 수술할 수 없다는 의사에게 앤드류는 말했다.
" 나 역시 로봇이오."

앤드류는 그리고나서 그동안 인간들에게 배웠던 권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수술을 나에게 시행할 것을 '명령'하오."

제 1법칙에 구애받지 않게 된 의사는, 너무나도 인간과 흡사한 외모를 하고있는 앤드류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충실하게 제 2법칙에 따랐다. 그리하여 수술은 진행되었다.

21.

어쩐지 머리가 둔해진 느낌은 순전히 환상에 불과하다고 앤드류는 확신했다. 그는 그러나 수술에서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가누느라 벽에 기대어야만 했다. 그냥 주저앉아 버린다면 모든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 것이다.

리싱은 말했다.
"이번 주 안에 최종 표결이 있습니다, 앤드류. 나도 이제 더 이상은 늦출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우린 결국 지고 말겠지요....결국 그렇게 끝나고 말아요, 앤드류."

"당신이 표결을 최대한 늦춰준 걸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얻었고, 이제 미련없이 도박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도박이라니, 무슨 얘기지요, 앤드류?"
리싱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에겐 말할 수 없었지요.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에도. 나는 이제 종말을 맞게 됩니다. 보세요, 두뇌가 그렇게 중요한 기준이라면, 결국 시간적으로 유한하냐 무한하냐가 제일 큰 차이 아니겠어요? 두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누가 그렇게 상관하려 들겠어요? 인간의 두뇌를 이루고 있는 유기세포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인체 기관들은 인공장기로 바꾸거나 남의 것을 이식하거나 해서 유지할 수 있지만, 뇌세포만은 절대로 교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걸 바꾼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개인의 개성을 없앤다는 말이니까, 결국 살인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지요.
나의 양자두뇌는 거의 2세기 가까이 작동해왔지만, 그동안 별다른 변화도 없었고 앞으로도 몇 세기 동안 별 탈없이 지탱할 겁니다. 바로 이 점이 가장 근본적인 차이 아닙니까? 인간은 로봇이 불사신 같은 삶을 누리더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기계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나 불사신과 같은 삶을 누리는 인간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한한 수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진리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요, 앤드류?"

"나는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십여년 전에 나의 양자두뇌는 인공적인 유기질 신경 조직과 연결되었지요. 나는 얼마 전에 한 가지 수술을 더 받았습니다. 지금 내 두뇌회로에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리싱의 주름진 얼굴은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뻣뻣해졌다.

"당신은 죽기로 작정했단 말인가요, 앤드류? 안 돼요. 그건 세 번째 법칙을 어기는 것이예요."

"아닙니다. 나는 선택을 한 겁니다. 내 육신을 죽이느냐, 아니면 내 포부와 욕망을 죽이느냐 하는 문제지요. 내 육신은 살아있을지언정 그보다 더한 것을 죽이는 선택을 한다면, 나에겐 그것이 세 번째 법칙을 위반하는 일입니다."

리싱은 앤드류를 쥐고 흔드려는 듯 그의 두 팔을 잡았다. 그녀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앤드류, 그래도 소용없어요. 다시 이전대로 회복시키세요."

"불가능합니다. 이미 너무 많은 손상을 입었어요. 나는 이제 일 년 남짓 살 수 있을 겁니다. 아마 그보다 약간 오래, 아니면 좀 더 일찍 죽을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내가 탄생한 이백주년이 되는 날까지는 버텨 볼 겁니다. 가까스로나마 그 때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얻는게 도대체 뭐지요, 앤드류? 당신은 바보군요!"

"내가 인간으로 인정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고통스런 투쟁은 끝나는 것이니까 역시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음순간 리싱은 스스로도 놀랄 반응을 보였다. 그의 두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2.

앤드류의 마지막 행위가 세상에 일으킨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격렬했다. 그동안 앤드류가 했던 어떤 일들도 이처럼 모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적이 없었다. 그는 인간이 되기위해서 마침내 죽음까지 선택했다. 사람들이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안타까운 희생이었다.
마지막 의식의 날이 다가왔다. 이백 주년 기념행사는 아주 성대하게 준비되었다. [세계 의회] 의장이 기념행사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고 선포하는 광경은 전 세계는 물론, 달과 화성 식민지에까지 중계방송되었다.
앤드류는 바퀴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직 걸을 수는 있었지만 비틀거리는 불안한 동작밖에는 할 수 없었다.

전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의장이 소리높여 선언했다.
"오십년 전에 우리는 앤드류가 백오십살 먹은 로봇이라고 축하했습니다."

잠시 후, 의장은 좀 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우리는 당신이 이백살 생일을 맞은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마틴 씨!"

앤드류는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의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23.

침대에 누워있던 앤드류는 점점 의식이 희미해짐을 느꼈다. 그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의식의 파편들을 붙잡았다.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다! 자신의 마지막 생각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 생각과 함께 영원히 어우러지며 자신의 존재를 끝맺고 싶었다.
인간처럼 '숨을 거두고' 싶었다.
가냘프게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렸다. 마지막으로 옆자리를 지키고있는 리싱의 경건한 모습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그 뒤에 다른 사람들도 여럿이 있었지만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눈 앞이 점점 어두워졌는데 이상하게도 리싱의 모습만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손을 들어올렸다. 내민 손을 그녀가 꼬옥 쥐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희미하게, 아주 어슴푸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리싱의 모습이 아련하게 희미해졌다. 그와함께 의식도 마침내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지해버리기 직전에 언뜻 무엇인가가 뇌리를 스쳤고, 아주 잠시동안이지만 앤드류는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작은 아씨."

그가 속삭이듯 중얼거린 소리는 너무나 가냘퍼서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