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2011년 11월 21일 [보기만 할거예요]

Day 1,462, 07:04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ourpeace

토요일에 진이를 부모님 댁에 데려간다. 진이엄마와 진이동생은 집에 남아있는다.
진이와 부모님 집에 가는 것은, 부모님 다니시는 교회에 진이를 데려가기 위해서다.
토요일에 가서 한밤 잔 후 일요일에 교회다녀오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뭏든, 토요일. 낮잠을 자고 난 진이를 데리고 출발했다.
2호선을 타고 가다가 4호선으로 갈아탄 후 한참을 가야 한다.

다행히 전철에 사람이 적어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진이는 한동안 손잡이를 잡고싶다, 저쪽 칸에 다녀오고 싶다며 아빠를 정신없게 만들더니,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진이는 아빠를 올려다본다.

"아빠, 흐응..."

심심해졌다는 뜻이다. 하긴, 지하철에 할 수 있는 놀이가 얼마나 되겠어.

"흐응... 아빠... 히잉..."

아빠는 외투 주머니에 넣어둔 과자상자를 만지작 거린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말린바나나와 계란과자가 들어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 가져온 과자긴 하지만, 진이에게 먹일 생각은 없었다. 과자를 먹으면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 저녁을 잘 안먹을테니까.
하지만, 이대로 두면 진이가 울 것 같다. 먹이지는 않더라도 관심은 끌어야 하겠다.

"진아, 과자?"

진이가 깜짝 놀란다! 아니? 집도 아니고, 과자가 어디에 있다는 거지?
진이의 동그래진 눈동자가 아빠 얼굴을 본다. 이게 사기인걸까?
아빠가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상자를 슥 꺼냈다.

"짜잔~ 아빠가 가져왔지롱! 먹을래?"

진이는 정신이 혼미해진 표정으로 플라스틱 상자를 노려보다가,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으응... 한번 보자! 흐응... 보기만 할거예요!"

먹겠다고 하면 거절당할까봐 그러는걸까?

"아빠아아~ 보기만 할꺼예요! 한번 보자~!"

아빠가 상자를 진이에게 넘겨줬다. 상자뚜껑은 비닐테이프로 봉해져 있어 열리지 않는다.
진이는 상자를 손으로 이리저리 만지며 살펴본다. 안에 보이는 바나나와 계란과자가 너무너무 탐스럽지만, 열 수가 없어 답답해 보인다.
진이는 상자를 두손으로 꼭 쥔 채 아빠를 올려다본다.

"아빠, 열어주세요. 진이는 보기만 할꺼예요~"

그 눈이 너무 애처로워 아빠는 비닐테이프를 뜯어 뚜껑을 열어주었다
은파는 상자 안에서 바로 말린바나나조각 한개와 계란과자 한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싱글벙글이다.
아빠를 다시 쳐다보고는, 다시 강조한다.

"아빠, 보기만 할꺼예요"

그리고나서 양 손의 과자를 살펴보다가, 아빠 눈치를 본다.
다시 과자를 보고, 다시 아빠 눈치를 보고.
그러더니, 양손의 과자를 번갈아 냄새를 맡아본다.

"흠? 우우... 우와아..."

과자 냄새가 마음에 드는걸까? 아니면, 아빠에게 어필하는걸까.
보기에도 안타까운 아빠는 결국 항복.

"진아 그래... 과자 먹어도 돼요..."

말이 채 끝나기도 무섭게, 진이의 양손에 들려있던 과자가 진이 입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챙겨왔던 물도 마시게 해줬다.
과자를 먹고 물도 꿀꺽꿀꺽 마신 진이가 다시 아빠 손에 들린 과자상자를 본다.
그리고 아빠손을 잡는다. 절대 과자상자를 잡지는 않았다.

"아빠, 보기만 할꺼예요"

여우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