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기사 2/ 포위를 자처한 프랑스의 오만/first 25th +Q5 50 food

Day 2,513, 08:01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Molang

에어스트라이크에 대한 주제로 미션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seoul city입니다.
이번 주제는 실패한 AS, 디엔비엔푸 전투 입니다.
(사실 2차 세계 대전의 공수 작전에 대해 글을 쓰려 했습니다만,, 나중에 쓸까 생각중입니다;😉

1. 오만이 빚어낸 실패한 작전
2차세계대전후 베트남은 프랑스에 독립을 요구하였으나, 바게트놈들은 하이퐁항에 포격을 떄리면서
빅엿을 선물해 드립니다. 이렇게 기나긴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되었죠.

시간이 흘러 1954년이 되었을 시점,,
프랑스는 하노이와 남부 사이공을 중심으로 대도시와 주요 도로들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주변지역들은 베트남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공산 세력들이 점차 라오스로 세력을 확장하자, 프랑스는 길목을 차단하고
일부러 포위를 자청하여 베트남 공산 세력을 유인하고자 합니다.
간단히 말해 스스로 미끼가 되고, 유인한 다음 한번에 전멸코자 한것이죠.
그리고 프랑스의 공수부대와 외인부대가 디엔비엔푸로 수송기를 통해 투입됩니다.
(이후 비행장을 갖춘 대규모 요새를 건설합니다.)


문제는 이 지역이 분지 지형이었다는 점입니다. 포위되기에는 너무나 좋은 위치였죠.
하지만 프랑스군은 1만 6천에 달하는 병력과 충분한 중화기, 공군의 지원 으로
감당할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에 비해 베트남인들은 열악한 환경속에서 5만의 병력과 수백문의 대포들을 손으로 밀어가며
디엔비엔푸 요새 주변 산악에 배치합니다. 프랑스군은 이러한 사실을 당연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1954년 3월 베트남 군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공격을 시작하였고
프랑스군이 믿었던 공군은 대공포와 날씨로 인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더불어 육로가 차단된 상태에서 공중보급에 의존할수 밖에 없었지만,
이또한 매우 어려웠고 비행장을 빼앗기게 되면서 보급도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1954년 5월, 프랑스 수비대는 항복을 하게되고
이후 아시아에서 프랑스 삼색기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앞뒤 상황 적당히 뺴고 최대한 간단히 썼는데
쓰는 저도 재미가 없네요;; 왜썼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ㅠ


+p.s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

아마도 한번쯤은 위 사진을 보신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 사진을 찍은 사진 작가인 로버트 카파는 디엔비엔푸에서 지뢰를 밟고 사망(전사)합니다.

사진출처
www.authentichistory.com
http://www.le-cartographe.net/jupgrade/dossiers-carto-91/asie/96-vietnam-la-bataille-de-ein-bien-ph
http://photohistory.tistory.com/13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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