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역사] 첫 한국인 베이비붐 그리고 최초의 한국인 대통령의 탄생

Day 1,615, 00:05 Published in South Korea South Korea by Eureka2011

역시 이번에도 Grease가 올린신문 그대로 갑니다... 수정작업은 댓글로 오류지적해주시면 해드림다!




첫 한국인 베이비붐
2010년 6월 첫 한국인들의 대규모 베이비 붐이 시작되었다. 그당시 다움 유로파 카페에서 정보를 접한 유저들이 넘어온것이었다. 그중에서는 유로파 카페원도 있었고 나처럼 카페에서 게임 정보를 얻고 넘어온 다른 커뮤니티 출신들도 있었다. 약 200~300여명 규모의 신규유저가 태어났고 그당시 인구수가 300명정도 하던 e대한민국으로서는 큰 변화였었다.
그당시 정부는 외국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 당시 e대한민국은 상당히 큰 문제를 지니고 있었는데 낮은 유저수, 빈약한 경제력과 빈약한 정부 재정, 낮은 군사력 등. 현실로 치자면 아프리카 빈국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당시 나는 여러 다른 웹게임을 해오면서 게임 시스템을 파악하는데 익숙하여 그 당시 게임에서 제공하는 위키와 외국인들이 쓰는 IRC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게임 매뉴얼을 쓰기 시작하였다. http://www.erepublik.com/en/article/1420695/1/20
이러한 미디어 활동을 통해 많은 후원자들과 지지자 들이 나타났고 서서히 영향력을 늘리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신문들은 거의 황무지 상태였고 영어 신문들 조차도 거의 전멸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주목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와중에 같이 도착한 유로파 카폐를 중심으로 뭉친 사람들중에는 그당시 정부의 미디어 장관 자리를 맡으면서 사실상의 번역 노예를 자처하는 그룹이 나타났었다. 뭐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당시 대통령인 알제이의 신문은 거의 사설 수준으로 그것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거는 거의 오바이트 나오는 수준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들은 번역노예질 하다가 찍 싸버렸다. http://www.erepublik.com/en/article/1421326/1/20 이정도 수준의 신문이 격일단위로 하나씩 나왔고 그거를 번역한다고 진을 다 뺴버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안스러웠다능. 그것도 무료로!!
나는 천천히 게임에 적응을 하면서 후원자들을 마련하고 지지자들을 모아나가면서 첫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당시 거부 알파그렘에게 회사를 선물 받았고 그 회사를 가지고 돈은 벌지 못했지만 회사를 돌리는 법과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Q5 or Nothing." 말 그대로 5등급 아니면 아무것도 할수 없는게 그 당시 경제 상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골드를 모아야 했고 대통령에 당선된뒤에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국가의 경제발전을 주도하게 되는데 이것은 추후 정리하겠다.
꾸준히 유저들이 커가고 서서히 게임 시스템을 알아 가던중에 첫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정치 입문
첫 정치 입문은 양키 아얄에 거주하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 대통령은 알제이 씨로 상당한 이상주의자였지만 그리 큰 지지기반은 없는 인물이었다. 재선을 위해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정당을 찾아야 했지만 그당시 알제이를 지지해주는 정당이 없었고 사실상 알제이를 후원하는 갑부 알파그렘으로서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아얄에서 한국인 정당을 만들어 주는 대신에 대통령 후보로 알제이 씨를 지지해주도록 하는 방법은 어떨까 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당시만 해도 알제이, 알파와 상당히 친했었다). 그에 대해서 알파로 부터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고 뭐 그래도 괜찮지 않겠냐 라고 이야기가 나왔고 그게 알파와 알제이를 통해 카페 운영진 쪽으로 연락이 가게 되었다. (정당 창설을 할려면 40골드가 필요하지만 그 당시 카페 내부에서는 이 골드를 마련하기 위해 모금이나 그런것을 하는 조직력은 없었다) 그 와중에 카페 운영진들측에서 나에게 왜 정당 창설 이야기를 내쪽에서 알파랑 이야기 하냐면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솔직히 나로서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왜냐면 나는 그당시 유로파 소속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하고 e대한민국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중이었고 그당시 외국인 선주자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최대한 가교 역활을 할려고 애쓴게 다였기 떄문이었다. ( 그 정당 창설 이야기도 그러한 제안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 해서 아마 받아들이지 않겠냐고 알파와 알제이 한테서 온 질문을 받아 준것에 불과하였다) 뭐 하여튼 그때 이후로 나는 카폐 출신과는 일부러 선을 긋고 스스로의 자리를 확립하기 위해서 양키들 사이에서의 입지를 강화하였고 그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38표로 당선이 되게 된다. (보통 2~4표로 당선이 되는데 그 당시 실제 투표자가 200명도 안되는 상황에서 38표는 좀 심하게 많이 받은 표였다)
그렇게 첫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었고 나는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서서히 지지를 늘려나갔다.
http://www.erepublik.com/en/elections/country-47-election-congress-0-date-2010-06-region-0 그당시 선거결과
논란의 과정끝에 결국 한국인 정당을 창당을 하게 되고 알파가 40골드를 대고 그에대한 대가로 알제이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 해주게 되었다. 그당시 나는 일부러 한국인 정당과 별도로 활동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외국인들이 지금까지는 호의적으로 대해주지만 너무 심하게 한국인들끼리만 모이는 모습을 보게되면 위기감을 느끼고 한국인들을 박대 할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일부러 독립노선쪽으로 활동하였다.
2010년 7월 대통령 선거에서 알제이는 재선을 성공하게 되고 그 와중에 나는 댄요라는 작자를 만나게 된다.

정치적 후원자 확보
그당시 나는 뉴비 매뉴얼 작성과 활발한 미디어 활동 그리고 유일한 한영 신문 작성자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던 와중에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게 된다. 그당시 갑부 알파그렘, 대통령과 그외 정부 관료들, 그리고 댄요와의 만남. 사실 그 당시 댄요는 대한민국 외국인 들 사이의 공적으로 불리었다. 그 이유는 2010년 5월쯤에 벌어진 한국 일본 전쟁을 주도했던 인물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나역시 그에 대한 언질을 받았기에 경계 하던중. 실제로 아얄에서 만나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던중에 서로 한국인 이라는것을 알게되었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된다. 그 당시 사실상 한국을 지배하는 알파그램과 사실상 일본을 지배하는 댄요와의 대립, 대한민국의 수많은 정치침략 역사, 그 와중에 벌어진 일들, 등등을 듣게 되었고 댄요와의 관계가 시작되게 되었다.
그러던중 알제이가 3선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그당시 마땅한 대안이 없던 알파그램으로서는 대타를 구하게 되었고 그당시 독립 노선을 세우고 있던 나에게 제안이 제안이 들어오고 그 다음 대선에 나가게 된다.

V2 세계대공황
대통령 선거가 있기 얼마전 V2라는 대규모 업데이트가 되었다. 이 업데이트는 기존의 업데이트를 뛰어넘어 게임 전체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사업구조의 변화 전투방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모든것은 파괴되고 새롭게 창조되었다. 그 와중에 많은 사업가들이 망했고 세계적인 대공황을 몰고 왔다.
V2가 대공황을 몰고 온 가장 큰 원인은 전쟁 시스템의 변화로 인해 전투력이 약한 사람들이 전투에서 경험치 조차 얻어가기 힘들게 만들어서 전투는 고랭커들만의 전투장으로 변했고 (PVP 식 전투로 바뀌어 고랭커가 저랭커들을 학살을 할수 있도록 만들었고 전투시 충분한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학살당하면 경험치조차도 얻기 힘들게 되었다.)이는 전투 물자의 소비가 전세계적으로 급감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리퍼의 산업은 대부분이 전쟁을 위한 물품 공급을 위한 산업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소비의 감소는 세금 수입의 감소를 불러왔고 충분한 세수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은 전쟁을 유지할수 없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국가의 경제는 파탄으로 치달아 갔다. (그당시 전투를 열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공짜가 아닌 골드를 써야 지역 공격이 가능하고 그러한 골드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전투를 여는것조차 버거워 하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일정규모 이상의 큰 전투가 아니면 세금수입 확보가 힘든 상황이 계속 되었고 약소국은 점점 연습전쟁을 위한 골드 확보조차도 힘들게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같은 빈국에게는 크나큰 타격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V2로 전환된 1달만에 피닉스와 에덴의 대규모 전투 외에는 전투가 사라졌고 그 결과 더 많은 국가들이 소비의 감소로 막장상태로 돌입하게 되었다.


첫 한국인 대통령탄생과 대한민국의 상황
2010년 8월 대통령선거에서 이기고
http://www.erepublik.com/en/elections/country-47-election-president-0-date-2010-08-region-0
첫 한국인 대통령으로서 최대한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나지 앟도록 내각 분배및 정치적인 배분을 균형있게 하였고 가능하면 이전의 정책대로 하면서 국가의 운영과정과 국가 경제 상황에 대해 좀더 알아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로인해 많은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것은 다음 2가지였다.
1. 대한민국에 박혀있는 각종 정치침략꾼들의 잠입,
그 당시에는 알파그램이 경제적 지배를 완료한 상황이었고 그 정치침략꾼들이 그당시 거대연합이었던 피닉스와 에덴 편으로 나뉘어서 대립각을 세우던 중이라 함부로 행동을 할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통제의 끈이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되어 균형이 무너지거나 알파의 경제적 지배가 없어지게 된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당시에는 한국은 주요 자원이 없었기에 정치침략꾼들이 굳이 공들여 침략을 한만한 우선타겟이 아니었던것도 그들이 마수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였다.)
2. 알파그램의 독점적인 경제지배 구조와 그 폐혜
그당시 한국의 갑부였던 알파그램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Q5 회사를 지니고 있었고 대한민국을 혼자서 먹여 살리만한 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의 경제적 지배구조는 확고하였고 그 때문에 한국의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도 만들어졌었다. 다만 문제는 그러한 경제적 지배구조 떄문에 국가의 경제적 성장을 알파그램에 의해 방해(사실상의 국부의 약탈)를 받게 되었고 새로운 경제인들이 알파에 의해 씨가 말리는 상황이 자주 벌어져 중장기적인 선구조로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알파를 어떤식으로든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취약하였고 국가재정은 파탄이 났으며 화폐의 가치는 상당히 낮은 수준을 유지했었다.
이 상황을 타개 하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국회 장악과 알파그램에 맞설만한 대기업 육성과 경제적인 선구조 확립이 필요하였고 그를 위해 플랜을 짜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