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 inovel

Day 2,258, 22:59 Published in South Korea Republic of China (Taiwan) by inovel

하얀 하늘에는 소리 없이 흰 눈만이 내리고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자동차도 없는 고요함 속에 한 전자제품 매장에서 뉴스 소리만이 들려온다.

'어젯밤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누군가 죽었다는 뉴스.

그러나 그런 뉴스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은 이미 사람들에게 친근하리만큼 익숙하다.

이걸로 다섯명째.

사람들은 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런것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다섯. 이것은 큰 숫자인가?

큰 숫자라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무엇에 비교해서 크고 작음을 판단했나?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오천만분의 오.

여기에다 간단한 계산을 해서 천만분의 일이라 해보자.

천만분의 일은 큰 숫자인가?

분모를 살펴보자.

천만. 맨 앞의 1이라는 숫자뒤를 따르는 7개의 0.

아마 대부분이 큰 숫자라고 대답하겠지.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눈, 저것들은 몇개나 될까?

사실이 아니라도 대략 천만이라고 가정해보자.

저 천만개의 눈송이 중 단 하나, 무작위로 선정된 단 하나

의 눈송이가 붉다면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할것이다.

천만분의 1은 그정도로나 작은 수이다.

그렇다면 다시 오천만으로 돌아가보자.

오천만개의 눈송이중 단 다섯개의 붉은 눈송이.

오천만분의 오, 천만분의 일.

산수상으로는 분명 같은 숫자다.

그러나 그건 수학이라는 학문의 관점으로나 봤을 때의

얘기고 현실로 들어오게 된다면 사천만이라는 엄청난

괴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드넓은 벌판, 땅에는 이미 내린 눈들이 쌓여있고 하늘에서는

몇천만이라는 새로운 눈이 내린다.

그리고 그 중 열개도 안되는, 그 손에 꼽을만한 몇개의

붉은 눈송이들은 사람들이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한

채로 기억속에서 잊혀진 후 숨막힐것 같은 수천만개의

눈송이에게 둘러쌓여 땅에 쳐박힌 후 곧이어

몇개의 흰 눈송이가 자기들 위에 올라타는 순간

그대로 파묻혀 잊혀지는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그렇게 보면 당신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지.

누구는 죽어라고 방송에 나가보겠다고 헛지랄을

해대지만 죽은 후까지도 못나가는 경우가 있거든.

마치 묻혀버린 하얀 눈송이 처럼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 말야.

그런면에서 당신들은 꽤나 색다른 경험을 하는

거라구.

만일 내일이 되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어제 그 뉴스 봤어? 사람이 또 죽었대.'

"어, 나도 봤어. 세상이 말세야 말세 쯧쯧."

자신이 모르는, 단 한번도 접촉의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당신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거지.

이건 사람들이 당신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는 거야.

살아생전 찾아보기도 힘든 인기를 죽어서야 느끼게

되다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참, 말세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확실히 세상이

말세긴 말센가봐.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관심도 없는 인간들이 나에

대해 욕을 한단 말이지.

아니, 내가 사람들한테 총을 겨눴나? 아님 칼로

찌르기라도 했나?

난 그런 폭력적인 행동은 안하는 주의야.

난 단지 지켜보기만 할 뿐이지.

손도 하나 안대고서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이게 결국 니네들이 하는 짓거리란

말이지.

뉴스에 내 이름이 나오는건 결국 너희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것일 뿐이야.

오천만 빼기 오.

약 오천만으로 잡았으니 여전히 오천만으로 잡자고.

오천만의 이름을 그 크지도 않은 브라운관에

집어넣으려면 방송을 하는 데에만 몇개월, 아니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인데 준비하는 기간은

얼마나 걸리겠냐고.

그래서 참 똑똑한 뉴스는 단 세글자 만을 써서 범인을

지목한거야.

그러니까 결국 너네들이지

아, 이런.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한명이 더 늘었어.

너희들은 봤을꺼야.

나도, 너희들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걸 말이지.

눈이 계속 내리네. 난 추운게 질색이라 이만 들어가겠어.



서서히 어두워지던 하늘은 결국 검게 물든다.

내일 아침 일찍히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가야 하는

신문들이 찍혀 나온다.

맨 앞장 아주 적은 공간을 차지하는 곳에는 고독사,

무관심 같은 단어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다.

신문을 찍어내는 인쇄기의 소리만이 들릴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눈송이들이 내려와 땅을

덮어 나간다.

잡음마저 모조리 묻어버리며 눈들은 세상을 덮을 뿐이다.



그리고 세상은, 침묵한다.


전에 제가 써 봤던걸 올려봅니다.
앞으로도 대략 이런식으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