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치면]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부결

Day 2,495, 08:36 Published in South Korea Republic of China (Taiwan) by IGROMIR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부결
- 반대표 55.4%, 찬성표 44.6%
- 영연방, 연합왕국 해체 피했다.




최저인금 인상, 연금 강화, 육아 보조 강화, 안정적 일자리를 위한 노동자 권리 복원등의 공약을 내세운 스코틀랜드 독립파의 꿈이 독립투표에서 무너지게되었다.

스코틀랜드는 1603년 엘리자베스 1세의 사망으로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혈통이 단절되면서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함에 따라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동군연합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법적으로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 왕국(Rìoghachd na h-Alba)란 독립된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이때까지 스튜어트 왕조의 왕은 '잉글랜드 국왕'과 '스코틀랜드 국왕'을 겸임하던 형태였으나, 1707년 1월 1일을 기해 연합법의 제정으로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란 이름의 연합왕국의 형태로 변경되면서 기존까지 동군연합으로 구성되던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에 있던 여러 왕국들은 '연합왕국 국왕'이란 하나의 군주 아래에서 구성된 각각의 지방이 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 색슨족이 스코틀랜드는 켈트인들이 주 민족으로 살아옴으로서 민족 구성과 역사적 구성속에서 빈번히 작고 큰 싸움을 하게됨으로서 스코틀랜드는 연합왕국으로 완전히 동화되지못했고, 근래 잉글랜드가 연합왕국의 중심으로서 가진 주도권과 중심 지역의 역할을 하게되지 소외감과 민족적 자존심 문제로 끊임없이 독립운동이 제기되어왔다.

게다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스코틀랜드의 철강업,광업,조선업은 쇠퇴하였으며 경쟁력을 상실하게되었으며, 그 이후, 마거릿 대처 수상 재임기간에서도 이루어진 대규모 사기업화와 산업 정리로 인해 스코틀랜드 지역은 경제적 몰락을 면치 못했다. 그러한 경쟁력 몰락은 1970년대 북해 유전이 발견될 때 까지 지속되었다. 경제적 몰락 스코틀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 정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Scottish National Party)의 지지가 확산되었으나 1979년 실시된 자치권 이양 투표는 40%만이 찬성하여 부결되었다.

하지만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독립이 가시화되었고, 그것은 곧 2007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을 내걸었던 국민당이 집권하게되는 계기가되었고, 2012년도엔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 시행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2014년 9월 18일 주민 투표를 실시하게되었다.

스코틀랜드에 분리 독립 움직임이 일어나자 영국은 발 빠른 협의에 나섰다. 영국 캐머런 수상은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아있길 주장하면서 분렬되면 영국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연합왕국 왕실은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투표 기간이 가까워지자 앞서 한 약속을 깨고 하나의 국가로 남자는 간접적인 반대에 나서게되었다.

또한, 영국에서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을 막아야했던 이유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시 자연스럽게 영국 북해의 유전을 스코틀랜드가 독점할 것이고 이는 영국의 경제규모에 큰 타격을 입힐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오일을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해야한다는 말도 떠돌아다녔다.

또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영국의 유일한 핵전력인 뱅가드급 SSBN의 기지가 스코틀랜드 파스레인 해군기지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만약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더라도 파스레인 기지는 잉글랜드가 사용료를 지불하고 계속 유지하기를 바라나,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에서는 비핵화를 위해 독립 시 뱅가드급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아예 핵보유 자체를 포기하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들어가자는 과격한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영국정부가 뱅가드급을 위한 새로운 해군기지 건설에 20년의 시간이 최소한 필요하다고 보고있다. 그리고 그것은 20년간 영국의 핵전력 공백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영국 육군(British army)은 상당한 전력 축소가 불가피하다. 현재 영국군 내에서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 육군을 기반으로 하는 부대가 많은데다가, 이름만 스코트 연대 하는 식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스코틀랜드의 편제 내에 있다. 스코틀랜드를 연고지로 삼는 부대 중에는 한국에도 유명한 블랙와치도 있다. 이들이 떨어져나가게 될 경우 영국군은 외형적 축소도 불가피하거니와, 스코틀랜드 출신 연대들은 1차대전 등 전통적으로 영국군의 히든카드 역할을 하는 정예 병력이었기 때문에 질적인 면에서 영국군의 군사적 역량 약화도 어느 정도 예상된다. 특히 아프간에 파병 중인 영국군 중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연대들이 빠지게 될 경우 근위병단으로 주둔군을 충원을 해야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2014년 9월 6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 조사 결과에선, 처음으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찬성의견이 반대의견을 넘었으며, 동시에 영국 파운드-스털링 환율은 투자자들의 불안감 때문에 나날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2014년 9월 8일 독립 찬성의견은 51%, 반대는 49%로 결과를 보였으나, 서베이션이 9월 1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립 반대가 53%, 찬성이 47%로 독립 반대의견이 다시 역전했다.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답한 유동층 10%를 포함시킨 결과도 반대가 47.6%, 찬성은 42.4%로 오히려 5%p 이상 차이까지 넘어간 상황이였으며 이는 투표가 임박하면서 찬반 여론이 혼전 양상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였다.



투표 결과는 한국시간으로 19일 오후 2시에 발표될것으로 예상되었다. 왜냐하면 출구조사가 없었기때문에 언론사들과 여론조사 기관들의 조사결과는 투표가 끝난 후에 발표가 가능했기때문이다. 출구조사가 왜 없었냐면 그 이유는 영국언론들은 스코틀랜드 독립투표가 너무 박빙이라 출구조사결과의 정확성이 보장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출구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투표방송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을거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즉, 스코틀랜드 독립투표는 투표개시 시점에서 깊은 안갯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한국시간 오전 11시~12시에 진행되고 있는 개표결과는 매우 박빙이였다. 북방 섬지역과 지방지역에서 No가 많이나와 전체결과 No쪽으로 기울더니, 던디 시의 투표함이 개봉되자 박빙으로 치달았으며, 이게 또 표차가 벌어져 No가 yes를 5% 포인트 내로 앞서는 상황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독립당의 본거지 근처인 앵거스에서도 No가 이기는 등 BBC 분석가들은 No가 우세하다고 예측하는 중이였다.

한국시간 오전12시 40분(오후 0시 40분),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개봉결과 No와 Yes의 표차가 10%이상으로 벌어져 No가 우세해지고 있었다. 대 도시지역인 애버딘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지역에서 No가 우세하게 나온 결과로 보여진다. 아직까진 중심도시인 글래스고와 에딘버러의 결과가 남아있긴 한대, 10%정도면 상당히 많이 벌어졌다. (NO-56.25% Yes-43.75😵

한국 시각으로 오전 12시 55분, 스코틀랜드 최대도시인 글래스고에서 Yes가 53%, No가 47%가 나왔다. 3만 표 정도 Yes쪽으로 기울었지만 이 시각 현재 20만표 차이를 보이는 NO를 뒤집기엔 부족해보였으며, 한국시각 오후 1시 15분, BBC가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Yes표가 생각만큼 높지않기때문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의 예상을 'No 우세'로 내놓았다. 또한 BB는 분리독립은 어려워보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국시각 오후 2시, 마지막으로 남은 미개봉지역 중 스코틀랜드의 대도시인 에딘버러의 결과가 No-61%, yes 39%로 나오면서 확실하게 스코틀랜드 독립투표의 결과가 No로 결정되어 가게되었고, 표차가 50만표이고 남은 도시들의 표를 합쳐도 90% 이상의 몰표가 나오지 않는 한 역전은 어렵다.

한국시각 오후 2시 10분, 결국 Fife(파이프) 지역의 투표결과가 No-55.05%(139,78😎, Yes-44.95%(114,14😎으로 나오면서, 이 지역을 마지막으로 No 진영이 투표율로 계산한 승리로 1,822,462표를 넘었다.

이미 전체 투표에서 No의 비율이 50%를 넘겨 이 이상의 투표개봉결과와 상관없이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은 부결되었다.

독립이 부결됨으로서 스코틀랜드 독립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영국은 결국 영연방과 연합왕국의 해체를 피하게되었다.

마지막으로 아직 독립을 찬성하는 44.%의 스코틀랜드 독립파를 위한 영국 정부의 정책이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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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움직임 "erepublik 속 영국에도 영향 끼치나"
http://www.erepublik.com/ko/article/-quot-erepublik-quot--2442127/1/20


참고 및 부분 출처 : 위키백과, 리그베다위키, BBC, 유고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