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기사 4/ 남송의 최후, 양양공방전 /+5빵 100개
Molang
미션기사를 진행중인 seoul city 입니다.
이제 드디어 4번째에 접어들었네요,
비록 미션때문에 시작했지만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 주셨기에 여기 까지 올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시작할때는 중국 다굴을 위해 각국이 AS를 시행 했던 터라,
2차 세계 대전의 4대 공수 작전(크레타 전역, 시칠리아 공격, 노르망디 상륙, 마켓가든) 중
최소한 하나를 다루려고 했습니다만,,
저도 부족한 부분이 많고, 간단히 쓰기에는 전후 사정을 반드시 설명해야 하기에,,
추후 기회가 된다면 한번 적어 보겠습니다ㅎ
상당수의 중국 영토가 삭제당하는 시점에서, 이번 회차의 내용도 중국 관련입니다.
(삼국지에서 나오는 양양 그 곳 맞습니다.)
1. 양양 공방전(1268~1273)
빨간 화살표가 양양입니다.
1234년 금나라가 멸망한 이후, 몽골의 주요 목표는 중국 남쪽에 남아있던 남송이었습니다.
남송은 금나라와 싸우면서 간간히 북진을 하긴 합니다만,, 주로 방어에 치중하였습니다.
더불어 사천과 강남을 잇는 산과 크고 작은 강들을 이용하여
10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방어라인을 구축합니다.
1235년, 몽골은 남송 공격에 나섭니다만,, 몽골 군은 사천의 남송 방어라인에 막혀 버렸고,
남송의 명장인 맹공은 지상전에서 몽골군을 북쪽으로 밀어냅니다.
1258년, 두번째로 사천을 주요 목표로 남송을 공격하지만 몽골의 대칸 즉위 문제와
송나라의 재상이었던 가사도와의 비밀 강화로 인해 다시 퇴각 합니다.
드디어 1268년 몽골은 남송의 주요 방어 거점인 양양을 공격합니다.
남송 또한 양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지역 사령관이었던 여문환이 수비에 나섭니다.
몽골군은 무리하게 성을 공격하지 않았고, 포위해서 고사 시키는 전략으로 전환합니다.
여문환은 포위를 풀기위해 교전에 나서지만, 상대는 역사상 최강의 몽골 기병입니다,,
돌파가 가능할리 없죠,,
1269년 남송의 수군은 양자강-한수를 따라 대규모 해상 보급 작전을 수행하고,
1271년에 가서는 수륙 합동으로 10만의 병력으로 양양성의 포위를 풀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시점에서 몽골군도 항복한 한인들을 통해 수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송나라의 원군은 문자 그대로 박살 납니다..
여태까지 양양은 한수 건너편의 번성과 배다리를 놓고 긴밀한 방어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만.
몽골 수군이 송 수군을 격파 하면서 양양-번성의 방어 또한 위태로워 집니다.
더불어 아랍인들에게서 투석기(만자니크)를 얻게 되면서 양양은 원거리에서 늘 공격을 당했죠,
결국 1272년 몽골군은 배다리를 끊고 투석기 공격을 통해 번성을 먼저 함락합니다.
여문환은 매일 수도를 바라보며 원군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이 시점에 와서는 황제를 저주하는 수준에 왔다고 합니다;;
당대 투석기
1273년 1월, 몽골의 대칸 쿠빌라이는 직접 친서를 보내 여문환에게 항복을 권유합니다.
여문환은 백성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고, 쿠빌라이는 쾌히 승낙합니다.
이후 남송의 멸망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1279년 남송은 애산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였고 신하였던 육수부는
9살 짜리 황제를 안고 바다로 투신합니다.
사견을 덧붙이자면 송나라는 대규모의 병력을 보유하였지만 수세적인 방어전략으로 인해
병력을 적시에 투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전략적인 예비대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1271년 송나라의 원군은 10만여명에 달했는데, 양양 포위 이후 3년이 지나서야 이러한 병력을
투입할수 있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1268년 시점에서 구원군과 양양이 협조할수 있었다면 몽골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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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도 많이 한것 같고, 보는게 불편하지 않으실까 걱정되긴 합니다.
골드 때문에 시작하긴 했지만(;😉
적으면서 나름 재밌었고, 다시 배운 점도 많았던 듯 합니다.
추후 기사를 쓸지 안쓸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전에 게임을 먼저 접을지도 모르겠네요😁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께 Q5빵 100개씩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
http://www.chogabje.com/board/print.asp?c_idx=30075&c_cc=AZ
http://www.bc8937.pe.ne.kr/WEFH67489SDFffgtr/read.cgi?board=pds2&y_number=1023
Comments
v1 첫타자네요.ㅋ 기사 잘 보고 갑니다.~
v2 재미있고 쉽게 배우고 가네요 😁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o7
v3
v4
v
수호지의 배경인 송나라가 배경이네요(수호지는 그냥 송나라때고 남송은 이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송나라는 문치주의를 표방해서 군사력이 약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10만 병력을 보니 아닌것도 같네요ㅋ 잘 읽었습니다
제가 넘겨짚어서 추측하자면 병사는 많으나 훈련된 지휘관의 부족, 그다음에 뛰어난 경제성장으로 굳이 군사력이 필요한가의 의문 자주 싸우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경험미숙이 결과적으로 군사력이 약해진거 같네요. 송나라의 전투를 보면 병사는 많은데 싸웠다하면 지니..
중국 역사에서 송나라 만큼 '국경'에 100만에 가까운 대군을 유지했던 국가도 없었습니다. 재정에 악영향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왕조들에 비하면 그리 삼각한 편도 아니었고요;;
송나라도 나름 명장들이 등장하는 것을 감안하면,, 항상 얻어 터지던게
지휘관의 문제라기 보다 문치주의 시스템과 나약하고 멍청했던 황실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송이란 나라가 무인 출신 절도사가 쿠테타로 세운 나라다보니 늘 쿠테타의 위험을 우려해 지방과 변방군의 수장을 유학자로 않히고 추밀원 같은걸 만들어서 문인들을 수장으로 시킬뿐만 아니라 장군과 사병을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게 하는등 자나깨나 모든 시스템을 중앙집권화 시키고 내부단속에만 집중하던 왕조라 자연스레 문치주의가 된거고 결국 외부침입에 속절없이 무너진거라고 보는거죠.
미션이었지만 재밌었어요~!
V
ㅁㅇㅇㅇ
V
v~~~
vv
v13
v
v15
v
v~
대대댓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v
v23
잘읽었어요~!
과학승리 실패!
v25
v 감사합니당 좋은주제 고마워요
V26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꼭 미션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이런 식으로 가끔 써주세요 ㅎㅎ
v
v
좋은글 항상 감사해요ㅎㅎ
v30
v
v33
v34 수고하십니다 😃